제3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시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눈길을 와락 붙잡는 것은 이런 건조한 수식어가 아니다. 작품 해설을 쓴 선배 시인 성기완씨는 겨우 서른셋의 시인에게 “급가속으로 상상의 세계를 야금하는 대장간을 차린 ‘조선어 연금술사’”라고 극찬했다. 원로 시인 김혜순씨는 “이토록 풍부한 이미지들이 시 한 편 한 편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끓어오를 수 있단 말인가”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찬사가 과장이 아닌 것 같은 시집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줄 아는 재주가 있는 시인이다. 신선한 비유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마치 펄떡이는 생선들이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감각을 벼린 결과이겠지만, 뒤집어볼 줄 알고, 다시 볼 줄 아는 등 사유 자체가 깊은 데서도 연유할 것이다.
“마당은 공룡 인형들로 무너질 듯 하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것들이/ 이제 작은 고무 인형이 된 채 마당을 걸어 다니다 이렇게 문득/ 정지해 있는 것이다/ 누가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공룡 인형’ 중에서)
낡아 버려진 아기공룡 둘리 인형을 보고 쥐라기 때 그 마당을 활보했을 공룡을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니.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에 눈길을 주고 거시적 세계로 나아갈 줄 아는 그의 감각은 ‘열심히 고기를 굽는 불판’ ‘곧잘 반으로 뚝, 부러지곤 하던 크레파스’ 같은 것에서 생의 아이러니를 추출해내기도 한다.
시집은 활달하다. 기본적으로 생의 에너지가 깔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도 달리지 않아 혼자 비 맞는 운동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처연하지 않다. 오히려 “어쩌면 운동장은 자발적으로 비 맞고 있다”고 본다. 읽고 있으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물결 같은 시어들에서 생에 대한 그의 의지가 전염되어 오는 듯하다. “나는 여름의 타오름 속에 슬쩍 몸을 끼얹고/ 잠시 같이 타올라 보는/ 여름/ 여름이다”(‘쌓아 올려 본 여름’ 중에서)
생을 직시하는, 직립하는 인간으로 오기 같은 태도다. 이는 표제시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 나올 때의 기분이란(중략)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중략) 현실 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룬 것 없거나, 적응하기 벅찼던 ‘지질한 삶’에 대한 회한이 몸을 휘감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이러스처럼 전염시키는 시집의 에너지가 새해를 맞는 힘을 줄 것 같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깊은 사유… 한 편 한 편 신선한 비유 빚어내
입력 2015-12-24 2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