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對日청구권 대행한 정부가 개인배상 제대로 했어야

입력 2015-12-23 17:59
헌법재판소는 23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이 제기한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헌재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내리는 처분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징용과 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 피해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제2조 1항은 여전히 유효하게 됐다.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강제동원 피해자 미수금 산정 방식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일련의 헌재 결정은 국내 정서와 한·일 관계를 고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원죄가 크다. 정부는 1965년 무상 3억 달러, 연리 3.5% 7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의 경제협력 차관 2억 달러, 민간 상업차관 1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는 조건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에 대한 보상 의무를 진다’는 내용의 청구권협정에 서명했다. 외국과 맺은 협정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일본 정부 주장이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지난 2005년 공개된 한·일 협정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103만명에 대해 총 3억6400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정희정부는 1975년까지 고작 징용 사망자 8552명의 가족에게 총 25억7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 차원의 보상을 매듭지었다. 극소수를 챙기고 절대 다수를 제외한 건 본말이 전도됐다. 당시 낙후된 경제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 돈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개발에 썼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해선 안 된다. 자기합리화에 앞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억만금을 줘도 이들의 잃어버린 청춘을 배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피해배상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정부가 특별법 등을 만들어 배상에 나섰음에도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는 건 그동안의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증거다. 마땅히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갔어야 할 자금이 오늘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한 만큼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하는 건 당연하다.

헌재의 결정으로 일본 전범기업들과 소송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처지가 곤란해졌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부는 청구권 분쟁을 외교적 수단 등으로 해결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를 위헌이라고 한 2011년의 헌재 결정을 곱씹어야 한다. 아울러 보상에서 소외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대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