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배구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총수 일가가 등기임원을 회피하면서 책임경영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총수 일가 전횡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어 의사결정의 투명성도 뒷걸음치고 있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재벌가(家)의 기형적 구조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비틀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3일 발표한 ‘2015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40대 대기업 계열사 중 총수 일가가 1명 이상 등기이사로 돼 있는 회사의 비율은 21.7%로 지난해보다 1.1% 포인트 감소했다.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도 지난해 8.5%에서 7.7%로 낮아졌다. 삼성 SK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신세계 LS 대림 미래에셋 태광 이랜드 하이트진로 한솔 등 13개 대기업 총수는 계열사 이사로 전혀 등재돼 있지 않았다. 특히 미래에셋은 총수 일가가 등기이사를 맡은 곳이 23개 계열사 중 한 군데도 없었다.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은 임기 만료와 중도 사임 등으로 2012년(27.2%) 이후 매년 하락세다. 이는 2013년부터 의무화된 등기임원 보수 공개의 영향이 가장 크다. 연봉 공개를 피하기 위해 총수와 친족들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는 꼼수를 부린 탓이다. 이 때문에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마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전권을 휘두르면서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으니 재벌에 대한 국민 정서가 좋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외이사는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 대기업 상장사의 이사회 안건(2014년 5월∼2015년 4월) 5448건 가운데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부결·수정된 것은 단 13건(0.24%)에 불과했다. 1년 전 비율(0.26%)보다 더 줄어든 수치다. 이러니 지배구조가 개선될 리 만무하다. 재벌 스스로 책임·투명경영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사설] 대기업집단 책임·투명경영 되레 후퇴했다니
입력 2015-12-23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