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문학·시대 사색한 지성, 그 울림은 세월을 넘는다… 고전이 된 두 비평집 재출간

입력 2015-12-24 17:53
김현(왼쪽)의 ‘행복한 책읽기’는 1992년 처음 출간돼 이듬해 ‘김현 문학전집’ 중 한 권으로 재출간됐으며, 이번에 문학과지성사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20여년 만에 다시 현대적 편집으로 선보였다. 1977년 나온 김우창(오른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재출간된 것도 1993년 ‘김우창 전집’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김우창 전집’은 5권 분량으로 선집에 가까웠으나 내년 총 19권으로 완간되는 ‘김우창 전집’은 50년간 쓴 5만5000여매의 원고 전체를 담아낼 예정이다. 문학과지성사·민음사 제공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거듭해서 읽히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비평집이 오래도록 읽히는 경우는 드물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읽히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서재에서 자주 발견되는 책,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의 모범으로 추천하는 책, 평론의 아름다움과 힘을 증명하는 책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 책들이 20여년 만에 현대적인 편집으로 나란히 재출간됐다.

‘행복한 책읽기’는 1990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48세에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이 죽기 직전 남긴 만 4년 치의 일기를 묶은 유고집이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을 얘기할 때 이 책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일기 형식으로 쓴 짧고 직관적인 독서 기록들, 그래서 본격적인 평론이라기보다 그 밑그림처럼 보이는 글들이 담긴 이 책이 현재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비평으로, 가장 뜨거운 비평으로 읽힌다는 점은 놀랍다. 1992년 초판이 발간된 후 지금까지 31쇄를 찍었다고 한다. 문학비평으로 이만큼 많이 팔린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기, 더구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일기에 ‘행복한 책읽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김현 본인이다. 김현이 맡긴 일기를 수습해 출간한 소설가 이인성은 “죽음과 삶이 팽팽히 맞선 곳에서 발생하는 긴장된 힘, 그 긴장된 힘이 불러들이는 투명한 직관적 통찰, 그 통찰에 의해 과감히 잔가지를 치며 핵심에서 핵심으로 건너뛰는 글 걸음, 그러면서도 구석진 어디라도 끌어안고 가는 크나큰 품”으로 이 책을 설명했다.

문학과지성사는 지난주 창립 40주년을 맞아 ‘행복한 책읽기’를 재출간했다. 1993년 전체 16권으로 완간한 ‘김현 문학전집’ 이후 두 번째 재출간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재출간본을 받고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 김우창(79) 고려대 명예교수의 첫 책이었다. 1977년 출간돼 “1970년대를 매료한 평론집”이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기준을 세운 책, 한국어로 문학과 사상, 시대를 사유하는 전범을 보여준 책이라는 평가가 동반하며 여전히 찾아 읽는 이들이 있다. 정밀하고 지성적인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다소 난해한 본격 문학평론집으로 40년 가까이 읽히는 경우는 이 책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내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 민음사는 ‘김우창 전집’을 총 19권으로 출간하기로 하고 먼저 1차분 7권을 선보였다. 1권이 바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다. 이 책이 재출간되는 것은 1993년 ‘김우창 전집’(전 5권) 이후 두 번째다.

‘궁핍한 시대’는 일제강점기 한용운의 시를 비평하면서 김우창이 고안해낸 말이지만, 1970년대의 시대 상황을 비유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지금 시대를 향해 사용해도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궁핍한 시대’는 한국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에 따르면 “철저함에 투철한 것이 김우창의 사유와 글의 특징이며, 이는 우리 문학 풍토에서는 유일무이하다.” 민음사에서 ‘김우창 전집’ 출간을 담당하는 신새벽씨도 “김 선생님은 창비의 참여문학론과 문지의 순수문학론, 둘 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그 사이에 아주 좁게 난 균형점을 치열하게 모색했다”면서 “매우 지성적인 평론”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북디자이너로 꼽히는 정병규씨는 38년 전에 ‘궁핍한 시대의 시인’ 초판을 편집했다. 이번에 ‘행복한 책읽기’ 재출간을 맡으면서 두 책을 다 만드는 경험을 했다. 그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서는 김우창 초기의 산뜻함이 무엇보다 좋았고, ‘행복한 책읽기’는 이번에 다시 읽으니 김현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 인생을 변론한 것처럼 보였다”면서 “김우창의 책이 한국 문학의 큰 지도를 그려낸 것이라면, 김현의 책은 그 지도 위의 굉장히 중요한 지점들을 에피그램(경구) 형식으로 표시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두 책은 넓이와 깊이에서 단연 돋보이고, 정신의 결정체 같은 걸 담고 있다”며 “한 번에 읽어버릴 책도 아니고, 참고하려고 꽂아놓을 책도 아니고, 늘 옆에 두고 싶은 책”이라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