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전남 여수 앞바다 외딴섬에 산타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신바람낙도선교회(회장 반봉혁 장로) 회원인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두툼한 옷과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어디론가 갈 채비를 서둘렀다. 회원들은 배에 타기 전에 반봉혁(63·순천왕지감리교회) 장로의 인도로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예수님을 위해 죽으러 가자. 낙도는 나의 교구다.”
50여분 배를 타고 산타들을 따라간 곳은 북(北)소두라도에 홀로 사는 김은조(89) 할아버지 댁. 이 섬은 여수 항구에서 20㎞ 떨어진 곳이다. 회원들은 끙끙거리며 쌀과 두부, 과일, 통조림, 과자, 휴지 등을 담은 봉지를 두 손 가득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계셔요?”라고 부르자, 인기척에 놀란 김 할아버지가 물끄러미 밖을 내다봤다. 곤한 잠을 깬 듯했다.
“저희예요. 낙도선교회 회원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가요?”
“아∼, 또 오셨네요. 늘 감사해요.”
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12년 전엔 양자로 들인 아들마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는 그는 문어 노래미 전어 등을 잡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회원들은 2009년 여름 김 할아버지의 집을 수리해 줬다. 거센 바닷바람과 태풍에 시달리며 집이 너무 낡아 수리할 데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회원들은 이날 김 할아버지를 위해 성탄축하 예배를 드렸다. 찬송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힘차게 불렀다. 김 할아버지는 웃으려 했지만 눈가에 이슬부터 맺혔다.
말씀을 전한 선교회원 최상철(58·함양 안의제일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과 기업은 복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쉴 때도 온전하게 지켜주신다”며 격려했다.
예배가 끝나고 배로 돌아가려 하자 김 할아버지는 기자를 불러 세웠다. 김 할아버지는 “요즘처럼 박한 세상에 아무도 찾지 않는 먼 곳까지 와서 손수 먹을 것과 쓸 것을 전해준다는 건 정말 칭찬받을 일”이라며 연방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10여년 전 선교회 목사님들에게 세례도 받았어. 기독교 신자가 되니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에 이제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아”라고 말했다.
선교회는 이렇게 낙후된 섬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생활필수품을 지원한다. 의료와 이·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낡은 집도 수리해주고 있다.
반 장로가 낙도선교를 결심한 것은 20여년 전 여수 앞바다에 낚시하러 갔을 때였다. 목이 말라 마실 물을 찾던 중 주민들이 모기가 떠있는 고인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을 봤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반 장로는 낙도선교회를 조직해 빗물이 아닌 생수를,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생수를 들고 찾아갔다. 거센 파도와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배가 고장 나 칠흑 같은 밤바다를 표류했다. 배와 배 사이에 끼어 으스러질 뻔 한 일도 있었다. 뿌리 깊은 무속신앙과 배타심 때문에 무시와 핍박, 신변의 위협도 이어졌다.
선교회는 현재 16개 교회 목회자의 사례비와 자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교회에 반주기 제습기 냉·난방기를 지원하고 벽화까지 그려줬다. 3개 교회 성전을 건축했고 2개 교회를 개척했다.
집중적으로 방문했던 18개 섬 가운데 85%가 복음화됐고 200여명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반 장로는 이 사역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간증했다. 그는 의약품 도매상과 집회강사, 후원금 등을 통해 매달 2000만원 넘게 들어가는 사역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그동안 참여한 봉사자만 2000명이 넘고 미국과 캐나다, 중국, 필리핀에서도 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앞으로 사역 계획을 묻자 반 장로는 “40억원을 들여 여수 항구에 소외된 낙도 목회자와 홀로된 사모,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겸용한 선교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며 “현재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낙도 주민 100%가 구원받을 때까지 계속 찾아갈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낙도선교에도 관심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061-726-4445·nakdo.or.kr).
여수=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신바람낙도선교회 봉사 르포] 외딴섬에 사랑과 복음을 선물합니다
입력 2015-12-23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