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하다. 편안하다. 포스가 있다. '외유내강'이라고나 할까.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1년 반 가까이 지켜본 김종덕(58)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이미지를 세 가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수 출신으로 학자다운 풍모가 물씬 묻어나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소통이 원활하고, 문화정책 수장으로 나름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다. 문체부 장관이 정계·관계·문화계가 아닌 학계 인사가 맡기는 드문 일이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을 뿌리내리는 역할에 힘쓰고 있는 김 장관을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내 집무실에서 만났다. 문화·체육·관광·종교 등 분야별 수두룩한 현안에 대해 다소 '공격적인 질문'도 던졌으나 대부분 '안전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동안의 업무와 성과를 자평해주시죠.
“이 정도 힘들 줄은 몰랐는데 교수 때보다 세 배 정도예요. 연봉에 비해 업무 강도가 너무 세요(하하). 이탈리아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관람객 230만명을 유치해 5040억원의 경제효과를 냈다는 게 보람 있는 일이죠. 국민들께서 어떤 점수를 주실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 일했어요.”
-대학교수와 공직자의 차이점은 뭔가요?
“학교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데 공직사회는 100%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달라요. 그래서 때로는 악역도 맡아야 돼요. 교수는 연구활동과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장관직은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요.”
-산하기관 인사와 관련해 ‘괄목홍대’라는 논란도 있었어요.
“취임 이후 ‘모든 인사는 철저히 업무능력 중심으로 선발해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고, 장관 책임 하에 업무성과로 평가하겠다’고 했어요. 문화예술 행정은 장르의 특수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인력풀 구성과 운영에 한계가 있지만 사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할 겁니다.”
-디자인 전문가로 특히 중점을 둔 대목이 있나요?
“한식, 한복, 한옥, 공예 등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고 대한민국의 인지도와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부처마다 제각각인 정부 상징체계를 개발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창출하는 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요.”
-정부의 ‘문화융성’은 성공적이었다고 보나요?
“문화 분야는 성과가 단기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어요. 문화융성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고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정착시켰다는 겁니다.”
-‘문화가 있는 날’이 공짜 심리를 확산시킨 측면도 있는데요.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국민 인지도가 지난해 1월 19%에서 올해 8월 45.2%로 높아지고 만족도도 80.4%에 달해요. 전국 2000여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국민들의 문화 향유에 크게 기여했다고 봐요. 다양한 문화 혜택은 공짜가 아니라 문화소비를 자극하는 최소한의 조치인 거죠.”
-한류가 K팝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건 오해예요. K팝이 한류의 대표주자인 건 사실이지만 영상과 웹툰, 패션과 뷰티, 한식과 전통 분야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한류가 민간 중심으로 추진돼 왔으나 정부 차원에서도 한류기획단을 발족시켜 다양한 분야의 확산을 모색하고 있어요.”
-문화시장이 극도로 침체돼 있는데 활성화 방안은 있습니까?
“메르스 사태로 문화예술과 관광산업 분야가 어려웠고 특히 공연계는 고사 직전에 처해 있었죠.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1+1 티켓’ 사업을 추진했어요. 연극·미술·문학 등 기초분야 활성화를 위해 대중화 정책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죠.”
-내년 예산 책정에서 중점을 두는 분야는요?
“창조산업 육성 및 문화융성 체감을 확산하기 위한 분야를 중심으로 편성했어요.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사업에 총 904억원, 문화가 있는 날 130억원(2015년 90억원), 문화예술 교육 활성화 979억원(848억원), 소외계층 문화순회 200억원(1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내년 문화정책을 키워드로 정의해주시죠.
“우리 부 업무가 문화예술, 문화콘텐츠산업, 관광 및 체육 등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양 날개를 토대로 ‘문화로 행복한 대한민국, 문화융성’이 되도록 정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당부할 게 있나요?
“마리 관장은 다양한 전시 기획과 미술관 운영에 대한 풍부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으니 임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믿어요.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국립미술관이 세계적인 뮤지엄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
“법인화는 미술관의 조직·운영 자율성을 높이고 운영 재원의 다각화를 통해 대국민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취지이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법인화 추진 관련 법안은 국회 교문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는데 내년에는 본격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윤이상의 독일 베를린 자택이 매각 위기에 처했는데요(국민일보 11월 30일 21면 보도).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의 자택이 매각될 처지에 놓여 있다니 매우 안타까워요. 이 사실을 현지 보도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정부는 2007년 윤이상 자택 매입과 리모델링을 위한 비용 8억원을 ‘윤이상평화재단’에 지원했어요. 왜 이렇게 됐는지 상황을 파악해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인터뷰 이후 일부 부처 개각을 앞두고 김 장관 경질설이 나오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퇴임 인터뷰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이뤄진 개각에서 김 장관은 유임됐다. 그동안 ‘문화융성’을 뿌리내리는 일에 매진해온 김 장관이 이제는 그 잎과 열매를 활짝 피워내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유임이라며 문체부 직원들은 반기고 있다. 온화하면서도 강단 있는 그의 스타일이 과시욕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나 고집스러운 문화인 출신보다는 업무 효율성 면에서 낫다는 평가다.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실세 장관’으로 떠오른 그가 앞으로 어떤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산적한 과제를 풀어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종덕 장관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디자인아트센터대학에서 석사학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NBC 영상감독, 선우프로덕션 감독, 한국데이터방송협회장, 한국디자인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홍익대 영상대학원장을 지냈다. 1992년 한국광고대상 대상, 1993년 SBS 광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여행과 암벽등반이 취미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인터뷰]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화융성 위한 분야별 투자로 체감지수 높이겠다”
입력 2015-12-23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