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리과정 파탄 위기, 책임 떠넘기며 방관할 텐가

입력 2015-12-23 17:59
내년도 누리과정(3∼5세 아동 보육)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전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의회는 22일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 예산으로 편성된 252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서울교육청이 편성조차 하지 않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과의 형평성을 내세웠다. 이로써 서울 광주 경기 전남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거나 시·도의회에서 전액 삭감당했다. 일부 교육청이 유치원 지원 예산을 확보했지만 시·도의회와 마찰을 빚으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지만 정부는 오불관언이다.

내년 전국의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은 2조1274억원이다. 정부가 3000억원을 우회 지원한다지만 턱없이 부족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보육대란’은 불가피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교육청이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학부모들에겐 수수방관으로 비칠 뿐이다. 당장 다음달부터 상당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직장맘들이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경제부총리와 교육부 장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예산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임을 감안하면 대통령 비서실도 비상한 자세로 임해야겠다. 누리과정은 박 대통령이 3년 전 공약을 내놓을 때부터 무상급식, 기초연금 인상과 함께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지금 와서 지방자치법 등을 근거로 무리하게 교육청에 부담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대국민 복지 혜택은 주기는 쉬워도 빼앗기는 어렵다. 누리과정 지원도 마찬가지다. 정치 여건상 중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총선을 치러야 하는 여야 정치권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다. 누리과정은 운영상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효과가 기대되는 저출산 대책에 속하기 때문에 큰 틀에선 유지하는 게 옳다. 하지만 현 상태로 지속 가능한 정책인지를 점검하고 개선책을 적극 모색해야겠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해법을 마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