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배철현 교수] 성경이 던진 위대한 질문에 답하다

입력 2015-12-24 21:13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우리 옆에 있는 낯선 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면서 “동료들을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래 그림은 카라바조가 그린 ‘이삭의 희생’(1594∼1596). 21세기북스 제공·국민일보DB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예수님은 어떤 의미인가?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하나님은 예언자 아모스에게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라며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준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며 불평하는 요나에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며 혼내기도 한다.

이처럼 성경에서 다루는 삶의 의미, 고통과 죽음, 인간 본성과 사명 등의 내용은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하신 걸까. 그 분은 언제나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단지 질문을 던져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할 뿐이다.

구약과 신약을 해설한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상 21세기북스)을 펴낸 배철현 (53)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남다른 통찰력으로 답을 제시했다. 배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고전문헌학 박사이자 고대 오리엔트 언어 권위자로서 구약성서에 쓰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신약성서에 쓰인 그리스어를 비롯해 다양한 고대 언어를 연구해왔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오전 배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 옆에 있는 낯선자가 바로 하나님(神)”이라고 말했다.

각각 508쪽, 35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배 교수는 구약과 신약을 순서대로 해설하지 않고 구약에서 하나님이 던진 13개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물은 15개의 질문으로 각 권의 기둥을 세웠다. 그 기둥을 토대로 자신의 전공인 중동의 고대언어와 문헌에서 추려낸 내용을 종횡으로 엮어 살을 입혔다. 또한 저자는 미켈란젤로 메르시 다 카라바조와 마르크 샤갈 등이 그린 성화(聖畵) ‘이삭의 희생’ 등과 최신 영화까지 동원해 책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이 책을 통해 배 교수는 성경에서 ‘익숙한 자아와의 단절’과 ‘낯선 이를 하나님(神)으로 대하는 자세’를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고향을 떠나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길 떠난 아브라함이 겪었던 낯선 공간, 집 떠난 야곱이 하늘로 닿은 사다리 꿈을 꾼 미지의 땅은 모두 두려움 속에 익숙함을 벗어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왕처럼 대접했던 낯선 자, 엠마오로 가던 예수의 두 제자가 동행한 낯선이가 모두 하나님이라고 배 교수는 말했다. 그는 “나와 다른 이데올로기와 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며 “그 낯섦과 다름을 수용하고, 그 다름을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며 대접할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한다.

배 교수는 “질문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통과의례”라며 “성서의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던질 때 의미가 있다”고 했다. ‘너는 어디 있느냐’는 ‘한국 사회는 어디 있느냐’로, ‘너의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는 ‘너의 이웃(동료)은 어디 있느냐’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성서에 감춰진 ‘침묵 속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배 교수의 결론이다.

저자는 먼저 “성경의 핵심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면서 “인간 내면의 신성을 찾아 그대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신앙이자 종교임을 알게 된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또 “창세기 1장 26절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현현으로 창조됐다고 쓰여 있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기초를 나타내는 것”이라면서 “인간은 신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교리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위대함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위대한 질문’에서 저자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서양인들이 그들만의 실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교리와 도그마를 통해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배 교수는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다니던 유대인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면서 “신앙은 분명한 해답이 아니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관과 신앙관의 끊임없는 파괴이며, 새로운 세계로의 과감한 여행이고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한 한없는 의심”이라고 밝혔다.

배 교수는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에 대해 한마디로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13년간 ‘성서와 기독교 사상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였어요.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들은 ‘우리 목사님(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던데요’라며 기존 지식을 확인하려고 하고, 둘째는 성경을 기독교인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안티 기독교이더라고요.”

KBS TV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 과학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저자는 성경의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성서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독점할 것이 아니고, 안티 기독교인이 무조건 배척할 대상은 더욱 아닙니다. 성경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류 공동 문화유산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답집이 아니라 삶을 깊고 넓게 보게 만들어주는 ‘위대한 질문지’입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