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朴 대통령의 2015년

입력 2015-12-23 18:00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점에서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매주 국민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많이 돌아온 대답은 ‘소통 미흡/너무 비공개/투명하지 않다’였다. 지난 1월부터 이번 달까지 실시된 48차례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소통 미흡’은 부정평가 이유 1순위로 30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0월 둘째 주부터 지난달 둘째 주까지 5차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광풍에 밀려 ‘소통 미흡’이 2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성완종 게이트로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의 사퇴까지 이어졌던 4∼5월과 ‘정윤회 문건’ 파동 때인 2월 넷째 주 등 5차례는 ‘잘못된 인사’가 부정평가 이유 수위(?)를 차지했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뒤덮었던 6월의 3차례 조사에선 ‘메르스 확산 대처 미흡’이 부정평가 이유 1순위에 올랐다. 노사정 대타협 문제가 이슈였던 3∼4월과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기 시작한 10월 첫째 주 등 5차례는 ‘경제 정책’이 ‘소통 미흡’을 제쳤다. 그러나 ‘소통 미흡’은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때에도 2∼3위권을 꾸준히 유지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 집권 3년차인 2015년은 ‘불통’이라는 단어로 기록된 셈이다.

반대로 긍정평가 이유 1순위로 많이 꼽힌 항목은 ‘열심히 한다/노력한다’였다. 48차례 조사 중 23차례였다. 22차례 1위를 차지한 ‘외교/국제 관계’를 제친 예상 밖 결과다. ‘대북/안보 정책’은 2차례, ‘주관·소신 있음/여론에 끌리지 않음’도 1차례 1위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불통’을 대변했던 올해 키워드는 ‘레이저’였다. 첫 등장은 지난 5월 12일 국무회의였다. 박 대통령이 “아휴 이것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와요”라고 말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하하”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박 대통령은 최 부총리를 노려봤다. 6∼7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엔 ‘레이저 시선’이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최대 하이라이트 장면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였다. ‘배신의 정치’라는 말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 ‘레이저 광선’을 발사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박 대통령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13일 뒤 사실상 강제 퇴출됐다.

이후 박 대통령의 ‘레이저 발언’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간결한 단어로 일침을 가했던 이전 화법과도 사뭇 달라졌다. 대선 후보 시절 보여주었던 썰렁개그와 유머는 사라졌다. 물론 여유도 없어 보인다. “나의 생은 한마디로 투쟁”이라는 박 대통령의 일기장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윽박 정치’ ‘호통 정치’ ‘질타 정치’ ‘여왕의 정치’라는 평가가 붙었다.

박 대통령의 말폭탄에 일반 국민들은 피로감마저 느끼고 있다. 메시지 거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요즘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일부에선 “우리는 3년 내내 못 자고 있는데”라고 화답할 정도다.

박 대통령은 내년에 집권 4년차를 맞게 된다. 4월 총선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다. 현재의 ‘레이저’ 리더십은 불통을 심화시킬 뿐이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만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국민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 찰스턴 총격 사건 추모식에서 주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감동을 줬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2016년 박 대통령에게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