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인연의 연속이다. 돌아보면 소중한 인연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동료 목회자를 통해 나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지금은 작고한 고 김우영(경기도 성남 만나교회) 목사님이 주축이 돼 1980년대 중반 결성된 ‘복음형제회’는 영성의 요람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복음형제회 회원은 나를 포함해 총 7명이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 모여 기도를 드린 뒤 머리를 맞대고 성경공부를 했다. 특정 본문을 바탕으로 7명이 제각기 설교를 준비해 서로 공유하면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성경 속 이 비유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었구나.’ 나의 신학을 가다듬고 영성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성경 스터디’가 전부였던 건 아니다. 우리는 연초가 되면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초대해 세미나를 열었다. 복음형제회 회원이 돌아가며 강사로 나섰다. 세미나에서 걷힌 헌금은 미자립교회 후원에 썼다. 우리는 순수하게 복음만을 받드는 비정치적인 목회자들의 모임이었다.
복음형제회 회원들과 97년 러시아를 방문한 일은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우리는 부부 동반으로 14일간 선교여행을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우리는 관광지를 둘러보고 현지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러시아 곳곳에서 집회도 인도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오랜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사회 질서가 불안정했다.
하지만 여러 곳을 방문하며 선교의 바람이 러시아에도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행하는 틈틈이 성령의 바람이 북한 땅에도 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14일간의 여행이 끝나던 날이었다. 어느 목요일 저녁 6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 귀국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티켓 예매가 잘못돼 일행 중 2명은 5일 후에나 귀국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명단을 보니 ‘낙오자’는 나와 내 아내였다.
우리 부부를 제외한 일행은 “미안하다”면서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는 러시아어 통역이 가능한 고려인 가이드를 통해 재차 항공사에 티켓 구매가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좌석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고무친의 땅에서 어떻게 5일을 보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나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날 때까지 기도를 하자고 결심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비행기 이륙시간 15분을 앞두고 공항 직원이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좌석이 생겼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비행기에 탑승한 뒤 벌어졌다. 안내를 받아 간 자리는 이코노미석이 아닌 1등석이었다. 추가 요금을 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 부부는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한국에 돌아왔다. 만약 공항에서 좌석이 없다는 말에 모든 걸 포기하고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작은 기적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예레미아 말씀이 떠오른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복음형제회의 좌장이던 김우영 목사님이 2005년 별세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뜸해졌다. 80년대 중반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복음형제회 회원과의 성경공부. 그것은 내가 목회자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해준 구름판과 같았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진호 <9> 러 선교여행 중 우리 부부만 공항서 ‘낙오’ 위기
입력 2015-12-23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