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카렌족 쿠뚜(44)씨는 1988년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태국 국경을 넘었다. 미얀마는 49년 소수민족 카렌족의 독립 선포 이후 10여개 민족과 정부군이 내전을 벌여왔다. 쿠뚜씨는 93년 아내(43)를 만나 태국에서 결혼했고, 96년 태국 딱주(州)의 메라 난민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84년 설립된 메라 캠프는 미얀마 국경에서 약 8㎞ 떨어져 있다. 미얀마인 3만9000여명이 지내는 최대 규모(55만여평)의 난민캠프다.
그는 이 캠프에서 큰딸(23)을 포함해 2남3녀 가족을 이뤘다. 캠프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2006년 태국 벌목회사에서 일하다 지뢰를 밟아 오른 발목이 절단됐다. 의족을 착용하고도 일을 계속해 딸을 태국 대학에 보냈고 가정을 지키려 무던히 노력했다.
3남1녀의 아버지 텐쏘(34)씨는 2004년부터 메라 캠프에서 생활했다. 아내(32)와 2011년 결혼해 기독교로 개종했다. 여섯 살 때 오른쪽 눈을 실명한 그는 한쪽 눈으로 가족을 부양해 왔다. 캠프에서 농장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가족을 위한 집과 화장실도 스스로 지었다. 텐쏘씨는 현지에서 열린 재정착 난민 면접조사 때 “한국에서 목공이나 건축 기술을 배우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각양각색 네 가족… 교육열은 한국과 같아
법무부와 유엔난민기구(UNHCR)는 10월 5일부터 열흘간 쿠뚜, 텐쏘, 나이우(29), 푸쪄(32)씨 등 네 가족을 상대로 면접조사를 했다. 23일 재정착 난민 제도를 통해 한국에 입국할 이 가족들은 2남3녀를 둔 쿠뚜씨네부터 한 살배기 아들이 있는 푸쪄씨네까지 다양하다.
미성년 아이들 13명의 평균연령은 7.2세. 부모들이 캠프에서 지낸 시간도 짧게는 11년, 길게는 19년가량 된다. 세 가족이 메라 캠프, 한 가족이 움피엠 캠프에서 생활했다. 움피엠 캠프는 23만평 부지에서 1만2600여명이 지내고 있다.
네 가족은 모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등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쿠뚜씨는 근육질 몸매가 개그맨 김병만씨를 닮아 면접조사관 사이에서 ‘병만 가족’으로 통했다. 대학을 나온 쿠뚜씨 큰딸은 미얀마어인 카렌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만큼 교육수준이 높았다. 현재 메라 캠프 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캠프에서는 유치원부터 고교 10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이후엔 단과대학과 같은 캠프 외부 칼리지 등에서 공부할 수 있다. 메라 캠프에선 신학대학 과정도 제공한다.
네 가족은 면접조사 당시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고 싶다”며 높은 교육열을 보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22일 “카렌족 가족문화는 한국과 비슷하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희생과 교육열이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나이우씨는 2003년 메라 캠프 생활을 시작했다. 아내(28)와 2005년 결혼해 세 아들을 뒀다. 한국에서 딸을 낳고 싶다고 했다. 푸쪄씨는 2002년 움피엠 캠프에서 아내(25)를 만나 2011년 결혼했다. 아내는 캠프 내 초등학교에서 카렌어, 수학을 가르쳤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 태극기 퍼즐 맞추기
법무부는 사전심사 및 건강검진을 거쳐 이달 초 네 가족을 최종 선발했다. 국가정보원 신원조회도 마쳤다. 모두 유엔난민기구가 우리 정부의 선발기준에 맞춰 지난 7월 공식 추천한 이들이다.
법무부와 국제이주기구(IOM)는 21∼22일 태국 메솟 지역 IOM 센터에서 15시간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한국의 사계절, 한국 인사말 등을 알려줬다. 가족들은 특히 한류 드라마 ‘대장금’에 큰 관심을 보였다. 모두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점을 고려해 항공기 타는 법도 배웠다.
아이들은 한국어 공부와 태극기 그림 퍼즐 맞추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한국 학교를 궁금해 했고 한국 친구 사귀는 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태국의 한국대사관에서 여행증명서와 사증을 발급받았고, 태국을 출국해 23일 오전 8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난민 반대 여론 불식, 꾸준한 지원이 관건
가족들은 6∼12개월 인천 중구 출입국센터에서 일반 난민과 같이 지내게 된다. 취학 연령대 아이들은 대안학교인 인천 한누리 학교에서 다문화 전문강사들에게 수업을 받는다. 센터 교육이 끝나면 각자 거주지역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게 된다. 미얀마 커뮤니티가 많은 점 등을 고려해 경기도에 거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재정착 난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지난 1월 범정부기관과 시민단체들이 모인 재정착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법무부, 고용노동부, 대한적십자사, 법무법인 어필 등 10개 기관이 참여한다. 재정착 난민 제도를 통해 세계적으로 9만3266명이 제3국에 정착했다. 난민 출신국으로는 미얀마가 2만3481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은 5만9548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재정착 난민은 한국처럼 육로를 통한 난민 유입이 적은 나라에서 난민 인정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한국은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 이후 불과 522명만 난민으로 인정했다.
제도가 정착되려면 난민 반대 여론 불식과 지속적인 예산 확보 등이 과제로 꼽힌다. 향후 난민 인원 및 대상 국가를 확대하는 것도 과제다. 캐나다 이민국은 지난 21일 내년 말까지 재정착 난민 제도를 통해 수용하는 시리아 난민을 5만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를 포함해 3년간 매년 30명 정도 미얀마 재정착 난민을 받을 방침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한국 땅 밟는 미얀마 난민 네 가족] 캠프서 키운 아이들… “한국서 교육 잘 시키고 싶다”
입력 2015-12-2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