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없으면 놔두고,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다소 무심한 듯한 문구가 적혀 있는 벽에는 갖가지 색상의 겨울옷이 하나둘씩 걸려 있다. 최근 들어 이란의 주요 도시에서는 이처럼 다소 낯선 풍경들이 주택가 담장이나 벽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벽에 걸린 옷들은 모두 노숙인을 위해 주민들이 잘 입지 않는 옷을 걸어놓은 것이다.
‘친절의 벽(wall of kindness)’이라 불리는 이 자선 캠페인 덕분에 최근 기온이 영하권으로 뚝 떨어지는 한파 속에서도 이란 사람들은 모처럼 따뜻한 겨울을 맞았다.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처음 시작된 이 캠페인을 누가 고안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캠페인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면서 남부 시라즈를 비롯한 이란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이 소개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벽은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친절의 벽’을 통해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도 “이란에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라고 치켜세웠다. 이란에서는 노숙인을 위해 거리에 냉장고를 설치하고 음식을 기부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반면 “시민들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동안 정부는 노숙인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란 전역의 노숙인은 약 1만5000명으로 이란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시민단체들은 이 수치가 수도 테헤란의 노숙인 수만 계산한 것이며 실제 전국 노숙인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해 왔다.
2002년 핵무기 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수년간 받아온 이란은 오랜 경기침체를 겪어왔다. 이로 인해 실업과 빈곤이 오랫동안 사회문제였다. 2013년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며 집권한 하산 로하니 정부는 지난 7월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13년 만에 핵 협상을 타결지었지만 경기회복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이란 노숙인 위한 ‘친절의 벽’
입력 2015-12-22 22:19 수정 2015-12-22 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