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앞 디뮤지엄… ‘대기업 미술大戰’ 판 커진다

입력 2015-12-22 19:54 수정 2015-12-22 23:38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터줏대감인 삼성미술관 리움. 이름은 설립자의 성(姓)인 '이(Lee)'와 미술관(museum)의 영문 표기 어미인 '움(um)'을 합성한 것이다. 아래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전시전경.(사진 왼쪽) 리움 제공 리움에 도정장을 내민 디뮤지엄의 이름은 대림그룹의 영문 이니셜 디(D)에서 땄다. 아래는 개관 특별전 '아홉개의 빛, 아홉개의 감성'전에 전시된 빛 아트거장인 베네수엘라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 작품. 디뮤지엄 제공

서울의 전통적 부촌 용산구 한남동이 재벌가(家) 미술관의 격전장이 됐다. 미술관·화랑이 집중된 삼청동 일대와 달리 한남동은 재계 1위 삼성의 리움미술관(관장 홍라희)이 독야청청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서촌에서 사세를 확장해가던 대림미술관이 한남동 분관인 디뮤지엄을 지난 5일 개관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림미술관은 재계 26위 대림그룹의 오너인 이해욱 부회장이 관장으로 있다.

두 미술관은 한남대교에서 남산터널로 이어지는 한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용호상박의 기세로 마주하고 있다. 각각 수성과 공세로 전략도 달라 미술가는 벌써부터 두 그룹의 대전(大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 리움이 명품 컬렉션과 권위, 우아함을 내세우고 있다면 대림의 디뮤지엄은 실용과 젊음, 다정함으로 맞선 형국이다. 2004년 문을 연 리움은 건축물부터가 명품이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램 콜하스 등 세계적 건축가 3인의 합작품으로 건축학도들의 순례지가 될 정도다. 아울러 조선후기 화가 정선의 ‘금강전도’(국보 217호)를 포함한 국보·보물급 고미술품이 상설 전시장을 채우고 있고 마크 로스코,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현대미술의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도 대거 갖추고 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배우자 만찬장소로 선택된 데는 이런 명품 이미지가 배경에 있다.

이에 반해 대림미술관은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관임에도 내세울 만한 컬렉션이 없다. 더욱이 기존 서촌미술관은 전시공간도 작고 아기자기해 스케일 큰 설치작품이나 대형 유화작품을 걸기에는 부적합했다. 이런 단점 때문에 사진과 디자인 전시에 특화한 것이 오히려 젊은층에 어필하면서 성공신화를 썼다. 대림미술관 관람 자체가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이 되면서 도로까지 길게 늘어선 관람객 줄은 뉴스가 되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의 아내인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전이 대표적이다. 디뮤지엄은 서촌미술관보다 넓어진 공간, 높아진 천장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기존 전시 콘셉트는 그대로 가져왔다.

22일 개관 특별전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전이 열리고 있는 디뮤지엄을 찾았다. 외관이 벽돌 건물로 심플하다. 전시 작품 역시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인식을 뒤엎는 쉽고 재미있고 감각적이다. 빛으로 드로잉을 한 듯한 영국 현대미술작가 세린스 윈 에반스의 작품, 빨강 초록 파랑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혼란을 경험하게 하는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의 작품, 원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데니스 패런의 작품 등이 그러하다. 한번 전시하면 5∼6개월 장기전으로 가는 전략도 같다. 전시는 내년 5월 6일까지 이어진다. 대신 아트 토크, 파티 등 이벤트를 통해 지속적인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디뮤지엄 전시는 현재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리움의 첫 고건축전인데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간판급 건축물 10곳을, 주명덕을 비롯한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조명했다. 여기에 국보 2점, 보물 4점 등 명품을 대거 동원했다.

미술계는 두 미술관의 서로 다른 전시 전략이 상생 경쟁으로 이어지질 희망하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더해 시너지를 내면서 용산구에 새로운 미술벨트가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