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복실]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전해라

입력 2015-12-22 17:51

지난주 드디어 종강을 했다. 캠퍼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방학 전 인사를 한다며 연구실로 찾아온 제자 K는 내년에 휴학을 할 예정이란다. 취업준비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서이다. 늘 씩씩하고 활달한 그녀가 취업 걱정에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것을 보니 30년 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학생이 취업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겨울의 을씨년스러운 캠퍼스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각종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은 취업에 대한 열망과 걱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청년실업자 수는 32만명, 취업에 곤란을 겪고 있는 청년은 약 116만명이나 된다. 정부가 작년에 실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국민의식조사’에서도 국민들은 우리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일자리 부족을 들었다.

이렇게 절벽 같은 심각한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사정위원회가 작년 9월부터 논의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노동개혁 5대 입법에 대한 타협안을 마련하였다. 어렵사리 만든 타협안이지만, 국회 통과는 아직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15만명 이상의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 하지만, 야당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이라고 반대한다. 여야 의견이 이렇게 다르니 국회 본회의는커녕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어렵다. 마지막 희망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인데 국회의장은 비상사태를 언급하면서 직권 상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로 인해서 그동안 지지했던 친정식구들의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요즈음의 갈등을 지켜보면, 한쪽에서는 매달리고 한쪽은 냉정하게 돌아선 애인의 행태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갈등의 피해는 아무 죄가 없는 국민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갈등할 이유가 없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타협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안을 찾는 것이 그동안 성원해 준 지지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이 시작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비정규직을 양산한다고 이런저런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 가보니 경력단절 여성들은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선호하였다. 2013년 경력단절여성실태조사 결과에도 이러한 선호도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자리 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민간의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제2차 면세점 선정은 시중의 화젯거리였다. 처음에는 재벌가의 전쟁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정작 피해자는 하루아침에 실직위기에 처한 직장인들이었다. 롯데는 1300명, SK는 900명 등 거의 2200명이나 되었다. 발표 직후 인터뷰에 응한 롯데 신동빈 회장의 첫마디는 월드타워 이전비용 3000억원의 손실도 아니고, ‘면세점 사업권을 잃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아니었고,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 직원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기업이나 국회나 정부나 모든 사회의 영역에서 일자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고 있고, 청년실업률이 8%를 상회하는 요즈음 상황을 다들 아시는가. 각각의 정치적 이익만 지키려하고 있을 때 청년들의 가슴은 절망으로 멍들어 간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버리고,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하여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일자리를 청년들과 함께 나누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어서 빨리 노동 관련 법들이 통과되어 취업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국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복실(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