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바라보는 세월호 인양 현장 “이젠 예수님 보내신 희망과 함께하길”

입력 2015-12-21 21:36
2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을 돕고 있는 박종찬 목사(오른쪽)가 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나핵집 목사(가운데)와 세월호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김현호 신부(왼쪽)에게 세월호 침몰 직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거차도 정상에 매놓은 노란 리본. ‘엄마는 더 강해진다’고 써 있다. 리본 뒤편 먼 바다에서 세월호 인양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1일 서울에서 420여㎞를 차로 달려 도착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동거차도로 가기 위해 들른 이곳 날씨는 궂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와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나핵집 열림교회 목사, 세월호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김현호 성공회 신부, 여성위원회 위원장 최소영 목사 등 8명이 동거차도를 찾은 이유는 이곳에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 작업과 관련해 참여를 요구한 유가족들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유가족들이 멀리서나마 작업을 보겠다며 찾아온 곳이 세월호 침몰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동거차도다. 김 총무 등은 동거차도로 떠나기 전 팽목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기도했다.

항구에서 1시간 남짓 10t 규모의 낚시배로 달리는 동안 바다는 거칠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 김 신부는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세월호 침몰 당시 아이들이 어땠을지 느껴졌다”며 가슴 아파했다.

섬에 도착해 동두산 정상까지 30분 정도 산길을 걸었다. 나지막한 정상에 오르자 통한의 바다가 보였다. “여기서 1.5㎞떨어진 곳에 보이는 대형 크레인 있죠? 지금 그 밑에 세월호가 있는 거에요.”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 아빠 4명이 일행을 맞으며 설명했다.

상하이샐비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은 멀리서 계속 되고 있었다. 이들은 이를 지켜보기 위해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이 섬으로 들어왔다. ‘윤민 아빠’ ‘은지 아빠’ 등 아이들 이름 붙인 호칭이 더 익숙한 이들은 지난 금요일 이곳에 들어왔다. 유가족들은 현재 일주일에 한 차례 3∼4명씩 조를 짜서 돌아가며 섬을 찾는다.

이들은 종일 하염없이 크레인의 움직임만 살펴봤다.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무얼 꺼내는지. 그리고 뭔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 포착되면 이를 일지에 적고 비디오로 녹화를 한다. 지난 8월 마지막 날, 산 모기가 기승을 부리던 때 들어온 이들은 어느새 새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지선 작업 승선요구를 해수부가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우리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가 온 뒤로 낮에는 작업을 안 하고 밤에만 해요. 자꾸 못 보게 하고 감추니까 볼수록 의혹이 더 생겨요. 내가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윤민 아빠’ 최성용(53)씨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입술이 떨렸다. 감정을 추수린 그가 말했다. “가족들은 감정의 기복이 매우 깊어요. 이성적으로 대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골이 더 깊어지네요.”

천막 앞에는 엄마들이 적어놓은 노란색 리본이 가득했다. ‘엄마는 더 강해진다’는 글귀에 다들 먹먹해졌다. 은지 아빠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동강동강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발에 밟혔다. 은지 아빠는 “아이들이 살아있었으면 여기에 놀러왔을 텐데…전남 해남보다 더 먼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힘든 순간이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끝까지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김 총무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베들레헴, 가장 약한 자들이 사는 마을로 오셨다”며 “주님께서 오신 것은 억울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소식을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 목사는 “진실을 기억하려는 자와 지워버리려는 자들 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진도=글·사진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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