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있는 파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바울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볼로파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교회 안에서 그렇게 파벌로 구분한다면 너희가 세상 사람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합니다. 이어 바울은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인가.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로 싸우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초대교회에서 헬라파 성도들과 히브리파 성도들이 구제 문제로 갈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러한 갈등, 파벌 문제가 교회들마다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2장은 교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32장에서 시작됩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보고 그들이 갖고 있는 가축이 많았으므로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살겠다고 하면서 그 땅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르우벤과 갓 자손이 결정한 일은 이스라엘에게 낙심하는 일이며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는 일이라고 책망합니다. 이 일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므낫세 반지파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함께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함께한 가나안 정복전쟁은 약 7년에 걸쳐 치러졌습니다.
그렇다고 이 전쟁으로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더라도 전리품을 얻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다른 지파가 차지해야 할 땅을 얻기 위해 싸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전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바울파냐, 아볼로파냐 하는 것 때문에 언쟁하고 파벌 싸움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누구를 먼저 구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분쟁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진보냐, 보수냐 때문에 서로 반목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민족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 우리 교회도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약속을 바라보며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자 함께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의 모습이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없다 해도 함께 갈 수 있고 속옷도 건네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 므낫세 반지파의 실천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모습이 아닐까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정택수 목사(캐나다 밴쿠버 록브리지교회)
[오늘의 설교] 교회가 가져야 할 주님의 마음
입력 2015-12-21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