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남극해 산타’ 아라온호

입력 2015-12-21 17:56

남반구와 북반구는 계절이 정반대다. 북반구에 속한 우리나라가 겨울이면 남극해는 여름이다. 남극해는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해빙(海氷)이 녹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역 곳곳에 거대한 유빙(流氷)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 선적 원양어선인 썬스타호가 처한 환경이 딱 그랬다. 좌초된 화면을 보면 썬스타호 주변은 얼음투성이였다. 이 어선은 지난 18일 오후 7시30분쯤 험난한 해역을 헤쳐 나가다 유빙에 얹혀 좌초했다. 얼음감옥에 갇힌 썬스타호 승선원 39명은 죽음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통신이 통했으니 망정이지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썬스타호는 메로(이빨고기)를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메로는 남극해에 사는 생선으로, 맛과 향이 좋아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조약이 어획량을 정해 놓을 만큼 귀한 어종이다. 대개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가량 메로를 잡는다. 썬스타호는 올해 남극해의 유빙이 두꺼워 예년보다 조업시기를 늦췄는데도 유빙의 덫에 걸렸다. 함께 조업에 나선 코스타호가 썬스타호 예인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고기잡이배로는 얼음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다. 쇄빙선(碎氷船)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남극해에서 ‘쇼생크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쇄빙선 ‘아라온호’가 나섰다. 아라온호는 남극 장보고기지에 물품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뱃머리를 돌렸다. 아라온호는 사고 해역에 도착하자마자 유빙부터 제거했다. 코스타호와 함께 썬스타호에 밧줄을 걸고 지그재그로 당겼다. 불가능해 보였던 썬스타호가 얼음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주변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아라온호는 2011년 12월 남극해에서 조난당한 러시아 어선 스파르타호를 구조한 전력이 있다. 그때 전 세계로부터 ‘남극해 산타’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번에도 아라온호는 썬스타호 승선원들과 가족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성탄 선물을 선사한 셈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