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3년차 정권의 초조함 크겠으나

입력 2015-12-21 17:41

집권 3년차인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법 등의 국회 처리가 안 돼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시절이 떠오른 것은 순전히 기시감(旣視感) 때문이다. 집권 3년차는 5년의 대통령 임기에서 국정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마저도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발목잡기로 생각되는 시기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격한 어조로 비난하고 청와대가 국회의장에게 현행 국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직권상정을 요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국민 누구나 있겠지만 대통령만이 갖는 걱정과 조바심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다.

일개 회사에서도 오너나 CEO가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반직원들과 다르다. 직장을 다니다 자영업을 시작한 지인은 회사에 다닐 때는 사무실에서 복사용지나 종이컵을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지금은 아르바이트생이 쓰는 종이컵 하나도 아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회 때문에 애를 태운 것은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05년 여소야대로 인해 국정과제들이 번번이 발목을 잡히자 당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총리 자리 등 권력 상당 부분을 넘겨줄 테니 국정운영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였다. 당시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여소야대로 상쟁과 갈등의 정치가 청산되지 않는 한 국가적 과제의 해결은 요원하다는 판단 하에 내놓은 제안”이라고 밝혔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사회적으로 합의가 안 되니까 나온 고육지책이었다는 의미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한 칼럼에서 대통령직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 국정운영 체계는 대통령이) 누구건 실패하기 쉬운 구조로 돼 있었다. 비정상적인 정당과 국회, 움직이지 않는 관료집단, 목소리 큰 재벌과 노조 등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바퀴도 핸들도 다 고장 난 차, 누가 기사가 된들 뭘 어찌하겠나. 수많은 난제와 그에 대한 몸 떨리는 결정들, 연일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 권력의 고통이 어떤지 알기에….”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개헌도 제안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국정운영 실패의 책임을 여소야대로 돌리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박 대통령이 경제 악화의 책임을 국회 탓으로 돌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여소야대 상황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주도해서 만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당이 일방적으로 법안 처리를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때만 할 수 있도록 규정된 직권상정 요구를 정의화 국회의장이 거부하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바람에 정 의장이 일약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대통령의 책무 중에 중요한 하나는 설득 노력이다. 최소한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라면 몰라도 정무수석이 국회의장 면전에서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국회가 밥그릇이나 챙긴다”고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 생각에 아무리 좋게 여겨지는 정책이라도 대화와 설득, 협상 절차를 반드시 거쳐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