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50) 못 다 핀 배우들

입력 2015-12-21 17:56
메살라역의 스티븐 보이드

TV에서 ‘빛나는 여배우 특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을 봤다. 제목답게 주연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아무리 감탄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오드리를 위한, 오드리의 영화’였다.

그러나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눈길이 간 건 헵번이 아니고 남자 주연 조지 페파드였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으나 새삼 주목한 페파드는 확 눈에 띄는, 잘 생긴 배우였다. 미남이 넘쳐나는 할리우드지만 영화가 나올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페파드는 푸른 눈에 금발, 소년 같은 동안에 우아한 매너, 스포츠맨 같은 균형 잡힌 몸집까지 그런 꽃미남이 없었다.

이 영화를 통해 스타덤에 올라선 페파드는 ‘60년대의 앨런 래드’라는 평을 들으면서 당시 가장 유망한 젊은 배우로 꼽혔다. 그러나 그는 채 피지도 못한 채 져버렸다. 후속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년에 TV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최소한의 체면을 살리긴 했다.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A 특공대’의 한니발 대장역으로 기사회생했던 것. 이후 그는 새롭게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드라마를 준비하던 중 94년 세상을 떠났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환하게 빛나던 젊은 페파드를 떠올리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긴 이처럼 잘 나가는 듯하다가 속절없이 스러져간 배우들은 더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티븐 보이드. 찰턴 헤스턴 주연의 ‘벤허’(Ben Hur·1959)에서 메살라역을 맡아 명성을 떨친 그 배우다. 그는 데뷔 초 남성적 매력으로 ‘새 (클라크) 게이블’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인기는 그럭저럭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70년대 들면서 성가가 급격히 하락해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B급 영화에 출연하던 중 77년 4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걸은 불운의 배우로는 엘리어트 굴드와 라이언 오닐, 그리고 리처드 라운드트리가 있다. 이런 배우들을 보면 배우로 성공한다는 게 생김새나 연기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