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니라 악마였다

입력 2015-12-21 00:43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아빠에 의해 2년간 집에 감금돼 학대받던 여자아이가 굶주림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경찰에 구조됐다. 엄동설한인데도 반바지 차림에 맨발로 탈출한 이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나이인데도 몸무게가 4세 평균인 16㎏에 불과했다. 늑골이 부러지고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딸 A양(11)을 2년간 집에 가둔 채 굶기고 상습 폭행한 혐의(아동학대)로 B씨(32)를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동거녀 C씨(35)와 그의 친구 D씨(36·여)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2학년 1학기까지 학교에 다녔지만 B씨는 2013년 인천 연수구 빌라로 이사온 후 A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뒀다.

직업이 없었던 B씨는 온종일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빠져 살았다. A양은 경찰에서 “아빠는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했다”고 말했다.

B씨는 딸을 툭하면 때렸다.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남은 음식이라도 찾아 먹으면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며 매질했다. 손과 발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옷걸이를 걸어두는 행거용 쇠파이프로 때리기까지 했다.

배가 너무나 고팠던 A양은 결국 집에서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지난 12일 오전 11시쯤 빌라 2층 세탁실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반바지와 얇은 긴소매 티셔츠 차림에 맨발로 빠져나왔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었다. A양은 탈출한 후 허기를 채우러 인근 슈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서 빵과 과자 등 먹을 것을 주섬주섬 챙겨 나오다 주인에게 발견됐다. 슈퍼 주인은 어린아이가 여름 옷차림에 맨발인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집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A양은 “고아원에서 나왔다”고 둘러댔다. 사실대로 말하면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경찰이 달래며 설득하자 A양은 집에서 갇혀 지내다 배가 고파 도망 나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A양은 늑골이 부러진 상태였고 다리와 팔 곳곳이 멍들어 있었다. 키는 120㎝, 몸무게는 16㎏에 불과했다. 열한 살인데도 영양부족 탓인지 몸무게는 4세 남짓, 키는 7∼8세 수준이었다. A양은 아빠가 일주일 넘게 밥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B씨와 동거녀는 A양이 도망간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채고 달아났다가 16일 오후 차례로 검거됐다. B씨는 8년 전 아내와 헤어진 뒤 동거녀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은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병문안을 다녀온 한 경찰관은 “사건을 수사한 후 A양이 웃는 모습을 오늘 처음 봤다”며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부쩍 늘어나는 등 빠르게 건강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치료가 끝나는 대로 A양을 아동보호기관에 인계할 방침이다.

인천=정창교 기자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