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시리아전 갈팡질팡” 돌직구 날린 헤이글… 美 안보 정책 ‘파고’

입력 2015-12-22 04:06

“백악관은 일관된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하다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오바마 집권 2기 첫 국방부 장관을 지낸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이 이슬람국가(IS) 테러 대응 미흡과 시리아 해법 부재 등을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헤이글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화학무기로 시리아 국민 수백명을 학살했다면서 “‘레드라인’을 넘은 알아사드 대통령을 응징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이 미사일 발사를 명령했는데, 돌연 오바마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공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고 포린폴리시(F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월 사임한 헤이글 전 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 여객기 추락과 파리 테러, 샌버나디노 테러 등 IS가 잇달아 테러를 벌이는데도 공습 위주의 기존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백악관 안보팀은 헤이글 전 장관의 폭로에 공식적인 반응을 삼가면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헤이글 전 장관의 공격은 백악관의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을 겨냥한 것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IS 테러 대응에 실망하고 있는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고 FP는 평가했다.

◇“오바마, ‘레드라인’ 넘은 알아사드 응징 안 해 신뢰 잃어”=헤이글 당시 장관은 2013년 8월 30일 저녁식사 도중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진행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헤이글 장관은 부랴부랴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명령을 거둬들였다. 당시 지중해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레드라인’을 묵살한 알아사드 대통령을 응징하기 위해 미 구축함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시리아 정부군은 같은 달 21일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반군 장악 지역에서 사린가스 등을 살포했다. 이날 화학무기 공격으로 502명이 사망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집계했다.

헤이글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공격중단) 지시가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며 “그러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는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나 동맹국에서는 지금도 ‘미국의 전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서 “대통령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안보팀은 결론과 전략 없는 회의만 되풀이”=헤이글 당시 장관은 IS 대응 전략 등을 놓고 백악관 안보팀과 갈등을 빚다 지난 2월 사실상 경질됐다. 헤이글 장관의 경질을 촉발시킨 계기는 그가 오바마 대통령과 라이스 보좌관에게 전달한 두 장짜리 메모였다. 그는 메모에서 ‘IS 격퇴와 시리아 내전의 해법을 위한 전략이 없다’고 썼다. 이 메모에 백악관 안보팀은 분노했고, 국가안보회의(NSC)는 분열했다. 헤이글 장관도 NSC의 멤버였지만 백악관 안보팀과 헤이글 장관의 갈등은 심해졌다. 미군이 육성한 시리아 반군이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보호할 것인지를 놓고 백악관은 NSC 회의를 열어 몇 주에 걸쳐 회의를 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고 헤이글 장관은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어느 테러집단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IS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가 백악관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백악관 안보팀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에게 하급관리들에게 물어볼 수준의 질문을 하거나, 백악관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폭로했다. 결론도 없는 회의를 2시간씩 여는 경우가 많았고, 대통령과의 독대 기회는 차단당했다고 헤이글 전 장관은 주장했다. 대통령을 일대일로 만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하면 넓은 회의실에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까지 참여한 자리에서 브리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 당혹스러웠다고 헤이글 전 장관은 말했다. 관타나모 기지의 수용자를 석방하는 속도가 느리다며 백악관 회의 때마다 비판받았다는 주장도 폈다.

백악관은 헤이글 전 장관의 폭로에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그러나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시리아 반군의 육성과 지원은 국방부 장관의 소관”이라며 반박했다. 회의가 길어진 것은 사안의 복잡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유엔 안보리, 시리아 결의안 채택했지만=헤이글 전 장관은 외교안보팀 중 존 케리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끌어낸 점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 유엔은 지난 18일 안보리 이사국 15개국의 만장일치로 시리아 평화 정착 결의안을 채택했다. 내년 1월 정전과 6개월 내 과도정부 구성, 18개월 내 선거 실시 등이 골자다. 미국과 러시아가 합의를 보지 못한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거취 문제는 결의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우리에겐 더 많은 군사적 수단이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이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