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팟캐스트 시대의 듣는 문화

입력 2015-12-20 17:36

듣는 문화는 보는 문화보다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본다는 것은 워낙 사람을 사로잡기 때문에 멍하니 보고 있다가 시간을 잔뜩 축내기 일쑤이지만, 듣기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사춘기 시절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문화 유전자는 계속 힘을 발휘한다. 이른바 ‘디제이 원조’들의 음악 프로들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말이 들리지 말라고 중고 시절 내내 틀어놓았던 ‘AFN’ 방송 덕분에 영어 듣기가 수월해졌던 덤을 얻기도 했다.

TV 시대에 라디오의 종말이 올 거라고 했지만 라디오는 살아남고 번성했다. 교통 체증이 심각해지고 출퇴근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역설의 변수도 작용했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더 진해져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TV란 나를 유혹할 소비자로만 보지만 라디오는 나를 위로해 줄 친구로 생각해주는 느낌이 좋다.

토론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라디오 토론 프로를 들어야 한다고 나는 강조하곤 한다. TV토론에서는 멀쩡해 보여도 소리로만 들으면 박약한 논리를 금방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그들의 소리만으로 모든 공인의 역량과 인간성과 윤리관을 파악하게 한다면 유능하고 착한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시대에 영상문화가 강해진다지만, 요즘은 팟캐스트 문화가 듣는 문화 전성시대를 만든다. TV보다는 낫지만 라디오 역시 광고가 들어가고 시간에 쫓기는 편이다. 그런데 팟캐스트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팟캐스트가 만 개에 달하니 시사, 독서, 문화, 종교 등 주제도 다양해서 골라 듣기 좋다. 가끔은 ‘보이는 팟캐스트’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듣는 팟캐스트가 대세다. 요즘은 TV나 라디오도 팟캐스트 서비스가 제공되니, 시간을 놓칠 걱정도 없거니와 그 내공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홀로 있는 새벽, 출퇴근길, 저녁, 그리고 주말에 듣는 팟캐스트,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나를 격려해주고 또 나를 공부하게 만든다. 고맙다, 팟캐스트 문화!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