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종교인과세와 종교자유

입력 2015-12-20 19:08 수정 2015-12-20 20:47

12월 2일 국회에서 종교인과세 입법안통과 발표를 듣고 이튿날 밤 비행기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미국 버지니아 남부의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티 유니버시티 교수들, 목회학·신학석사, 목회학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한국의 종교인과세 입법화를 계기로 종교인소득세를 통한 교회와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따른 종교의 자유에 관한 간담회를 갖기 위함이었다.

2박3일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의 한인교회들을 방문해 미국에서는 종교인과세와 종교자유의 문제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운영하는지에 대한 자문을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 중에서 종교자유와 정교분리의 거의 유일한 모델이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법학도로서 대학 4년을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위해 최루탄 가스에 절어 살았다. 젊은이들은 군화발에 밟히고 얻어맞고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강제로 입대했다. 당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당이 민주당이었는데, 지금 그들이 1967년 헌정질서로 잘 지켜졌던 국민의 기본권인 종교자유를 유린하는 일에 오히려 앞장을 서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정부는 ‘증세가 없이는 복지도 없다’며 종교인과세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모든 종교교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한 축은 타인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곳이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이다.

모든 종교가 연합해서 사회복지와 봉사를 1년만 중단하기로 결의를 해보면 어떨까. 무료 급식, 노숙자 쉼터, 청소년 쉼터, 노인 요양원, 영·유아 보육원, 병원, 감호소 등 각 분야에서의 구제와 호스피스, 미혼모 돌봄, 베이비 박스까지 셀 수도 없는 사회안전망을 1년만 중단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종교가 감당하고 있는 사회안전망의 모든 역할과 예산을 국가가 1년만 해보고 종교인 과세를 얘기하면 좋겠다.

목사들은 부와 궁핍에 연연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을 인내로 터득하고 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나 교육 전도사들 모두 근로 장려금을 신청한다면 정부가 교회에서 받아내겠다는 예상납세액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정·재계의 탈세를 막고, 정부의 예산을 정직하게 집행하고, 낭비나 비리를 막는 것으로도 종교인의 예상납세액을 뛰어넘는다는 수치도 이미 정부는 가지고 있다.

언론은 국회의원들이 표를 의식해서 교회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 그 성역을 무너뜨린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정말로 행정부는 대한민국의 입법부를 그 정도 수준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

국가예산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 종교를 가진 신자이면서 과세를 찬성했다면 이해할 수는 있겠다. 증세 없이는 복지를 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법안에 대해서 신자지만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권을 한 국회의원들은 참 잘한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종교가 국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인식하고 고민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한 분들은 그들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 혹은 신자든지 비신자이든 나라를 정말 사랑하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용감하고 정직한 분들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잘 알고 법을 준수하는 분들이다. 진정 종교가 어떻게 나라를 지탱하고 성장하게 하는 뿌리의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는 국민을 위한 나라의 참된 일꾼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새벽 4시에 공항에 내려주면서 싼 티 난다고 웃던 큰아들 생각이 난다. 직항과 비교하면 거의 배의 시간이 걸리는 귀국길도 멀고 종교인과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더 멀다. 1989년부터 이미 대형교회들은 근로소득세를 내기 시작했다. 가톨릭도 이미 근로소득세를 납세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확대해서 납세하겠다고 한국의 3대 종단 대표들이 국회에서 의견을 표명한 것이 벌써 2년째다.

종교인과세는 3선을 하겠다고 부정선거를 했던 자유당 말기에도 없었던 일이고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자고 온 나라가 새벽부터 노래하며 일하던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군부독재로 인권이 말살되고 민주주의가 사라진 암울하던 시기에도, 외환위기 때 모든 국민이 금반지를 빼서 위기를 넘기면서도 지켜졌던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종교자유였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종교의 자유, 국민으로서의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찾는데 헌신할 것이다. 잠을 청해야겠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박종언 목사 <한교연 인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