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문흥호] 모란봉 악단의 어이없는 파열음

입력 2015-12-20 17:37

북한 모란봉악단의 중국 공연이 돌연 취소되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공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단원들을 급거 귀국시킨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중국 외교부는 ‘업무상의 소통 문제’라는 12월 12일의 신화통신 보도를 재확인할 뿐 일체 함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경위가 어떤 것인지 간에 북·중 관계의 불안정한 국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긍정적 변화 조짐을 보이던 북·중 관계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모란봉악단의 공연 불발에도 불구하고 북·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북·중 관계를 적절한 수준으로 회복시키고자 노력했으며 북한도 그간의 불편했던 속내를 최대한 삭이고 중국의 화해 제스처에 응했다.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동안 북한에 대한 무시, 방치의 정책을 바꿔 중국이 북한 지도부를 다독거리고 지도부 왕래와 경협을 재개하려는 시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 하나로 다시 냉랭한 관계로 돌아서기에는 서로 아쉬운 게 많다. 특히 북한은 겉으로 허세를 부리지만 속내는 편치 않을 것이다.

둘째, 파국 봉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향후 관계 발전의 수준과 범위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북·중 관계 전반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고자 한다. 반면에 북한은 그간의 소원함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 예외적 우호관계의 계승, 발전을 원한다. 그런 간절함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류윈산(劉雲山)의 방북과 시 주석의 복고풍 축전을 계기로 자신들의 버티기 전략이 성공했다는 자기 희망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란봉악단 공연을 준비하면서 북한이 관람 인사의 격, 공연 내용 등에서 특별한 예외를 요구한 것도 중국의 관용을 과도하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의 뇌리에서 북한이 그토록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존경심은 이미 사라졌다. 북한이 중국 당·정·군(黨·政·軍) 지도부의 인식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셋째, 이번 사건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 기조, 정책결정 과정이 과거로 회귀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과 예외적이고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기 바라며, 따라서 북·중 관계가 과거의 혁명, 이념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당대당(黨對黨)’ 관계로 정착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의 주요 실무는 이미 외교부가 장악하고 있으며 대북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독점적으로 관리했던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中聯部)의 수장도 최근 외교부 부부장 출신인 쑹타오(宋濤)로 교체됐다. 대외연락부의 기존 틀을 유지하되 내부적인 작동 메커니즘은 외교부가 관장한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역할과 위상이 약화된 대외연락부가 북한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불발은 시진핑 집권 이후 소원했던 북·중 양국이 새로운 관계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호 인식과 기대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예외적 배려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혁명의 기억과 이념적 색채가 북한과는 확연히 다르다. 중국으로서는 세상물정 모르고 떼쓰는 북한이 딱할 뿐이다.

다만 국가 이익의 득실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중국이 단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북한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변심한 중국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애정이 식은 북한과 중국이 갈라서지 못하는 이유다.

문흥호(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