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 분열사태에 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17일 광주 번화가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파로 잔뜩 어깨를 웅크린 채 속내를 풀어놨다. 대다수가 안철수 의원 탈당의 책임이 문재인 대표에게 있다고 보는 듯했다. “아직 보여준 게 없다”거나 “탈당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로 안 의원을 원망하는 이도 많았다. 직장인의 입에서도, 대학생과 주부의 입에서도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걱정만큼 짙은 입김이 겨울 하늘에 피어올랐다.
◇“문재인 책임 크지만 안철수도 탈당 말았어야”=대학생 김연경(21·여)씨는 대뜸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충장로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돌멩이를 걷어찼다. “개판”이라고 욕을 내뱉는 60대 남성도 있었다. 시민 대부분이 분열된 야권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안 의원 탈당에 문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과 총선 승리를 견인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다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분열을 택한 안 의원에게도 쉬이 마음을 열진 않았다.
금남로4가역에서 쇼핑을 하던 정채순(68·여)씨는 “옛적엔 문재인 좋게 봤는디 고집이 심해써가꼬 시방 호남에선 인기 없재”라며 “그리 고집 부려싸코 굽히라고 해싼 게 안철수가 탈당 안 하고 배기것능가”라고 말했다. 연구원 문형주(41)씨도 “친구들하고 한잔 하믄서 얘기 해보면 죄다 문 대표 잘못이라고 하더라”며 “문 대표가 안 의원한테 여지를 안 줬자네요”라고 했다. 그는 “호남엔 ‘새정치연합 심판론’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안 의원 탈당이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입시학원 교사인 이민혜(29·여)씨는 “그 때문에 야권 통합은 힘들겄고, 정부나 여당 견제하는 일도 힘이 빠질 거인디 선거 앞두고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새정치연합 바뀌어야 한다, ‘안철수 신당’도 아직 못 미덥다”=그러나 문 대표가 ‘야권분열’ 책임이 크다고 한 시민들도 아직까지 ‘안철수 신당’을 미더워하진 못하는 분위기다. 안 의원이 지금껏 ‘새정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금남로 지하상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이성현(62)씨는 “문재인 패권주의는 타당치 않지만서도 호남이 글케 안 의원한테 호응할랑가는 잘 모르겄소”라고 했다. 그는 “안 의원이 시방까지 뭘 했능가 잘 모르겄다”며 “리더가 돼가지고 뭐래도 하는 걸 봐야 쓰겄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한다는 최영철(59)씨도 “안철수가 기대했던 거 비해서 별로 보여준 게 없자네. 신당을 만들등가 말등가 별로 기대는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안철수 신당이 옛날 열린우리당 창당 때처럼 표만 가져간 뒤 호남은 신경도 안 쓸까봐 걱정이재”라고 했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지만 대안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정미리(37·여)씨는 “전라도는 다른 지역보다 권력적으로 축소된 부분이 있다”며 “당이 여러 개 생겨서 경쟁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제3세력이 야권연대 없이 지역일꾼과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도 있었다. 한 40대 남성은 “신당을 제대로 만들어가꼬 새정치연합과 붙어부러야 한다”고도 했다.
광주=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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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18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