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군 관촌면 임실전원교회는 교회 노년 교인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서 교회를 운영한다. 노인을 배려한다며 교회 주요 행사에서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하는 다른 교회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표적인 행사가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개최한 ‘봉숭아 꽃잔치’다.
정서적으로 따뜻하면서도 교회의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행사를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최형 목사가 낸 아이디어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봉숭아는 추억이 어려 있는 꽃이다. 또 어느 집 담벼락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하고 소박한 꽃이기도 하다.
이들은 교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1000평 정도의 땅에 봉숭아를 심기로 했다. 처음에 “무슨 봉숭아로 축제를 한다냐”며 부정적이었다. 또 막상 심으려고 하자 묘종이 부족했다. 하지만 “임실전원교회에서 봉숭아를 심는 데 묘종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곳곳에서 자기 집 마당이나 담벼락 아래 피어있는 봉숭아를 캐서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교인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전부 거들었다.
묘종 1만개를 확보한 다음, 땅을 일구고 봉숭아를 심는 일은 남신도회 회원과 농사를 지어본 권사들이 도맡았다. 박태임 권사(68)는 “심는 것도 힘들었지만 심고 나니 얼마나 풀이 많이 생기던지, 그거 뽑느라 진짜 힘들었지. 그게 젊고 힘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이라며 은근히 자랑했다. 박 권사는 “재미도 있고 우리가 해냈다는 성취감도 생기더라고”라면서 “근데 아무리 힘이 들어도 교회 일이니까 하는 거지,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일하기가 어렵지”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3일 두 번째로 열린 봉숭아 꽃잔치에는 임실 주민을 비롯해 관광객 등 1000여명이 방문했다. 교인들은 봉숭아 화전을 부쳤다. 방문자에게 무료로 국수를 만들어 대접했다. 또 먼저 따서 곱게 말려놓은 꽃잎으로 부채도 만들었다. 노인들은 곳곳에 천막을 쳐놓고 방문자의 손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줬다. 최근숙(63·여) 권사의 손가락에는 아직도 빨간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었다. 최 권사는 “어떻게 해야 손톱에 꽃물 색깔이 곱게 나올지 먼저 백반을 갖고 실험을 해보고 연구까지 했다”며 수줍다는 듯 웃었다.
근사하게 지어진 교회 건물에 봉숭아 꽃밭까지 펼쳐지자 노인들은 “우리 동네에 진짜 예쁜 교회가 있으니 한번 와 보라”며 시키지도 않은 전도를 하고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산책도 할 겸 봉숭아 꽃밭을 찾았다. 그리고 교회를 다시 보게 됐다. 30여명이던 교인이 130명으로 늘어나면서 관촌면 병암마을 주민은 친목모임도 주일을 피해서 잡았다.
최 목사는 임실YMCA와 손잡고 외부 음악가를 초청해 교회 본당에서 음악회도 열었다. 임실군수가 후원을 자처하며 음악회 준비 비용을 지원했다. 축제를 통해 지역 사회를 자기들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 교인들은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 다시금 신뢰를 품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회는 내년부터 ‘노인성경학교’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부분 농촌 지역 교회에선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부흥회 정도다. 하지만 임실전원교회는 교회학교 어린이를 위한 여름성경학교처럼 3∼4일 동안 노인들이 교회에 모여 하루 종일 말씀을 배우고 암송도 하는 진짜 노인성경학교를 개최키로 했다.
전윤희 부목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신도회와 여신도회 노인에게 프로그램을 하나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교회학교 아이들처럼 매일 모여서 연습하고 부채춤 공연을 해주셨다”며 “율동 하나 배우는 것도 신나서 하는 노인들 모습을 보면서 노인성경학교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시력이 약해져 성경읽기도 쉽지 않은 노인에게 재미있게 성경을 풀어서 전하고, 그림도 그려보고, 찬양도 부르면서 침체되기 쉬운 영적 상태를 채워주자는 취지다.
전 부목사는 “노인성경학교는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교인’이 교사로 봉사하는 등 우리교회 대부분 성도들이 빠지지 않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다음달 노인성경학교를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프로그램을 잘 다듬어서 다른 교회에서도 활용해 볼 수 있도록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실=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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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0 20:46 수정 2015-12-20 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