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견 네이비실 ‘고문치사’ 사건 은폐… 가담요원 징계 대신 진급도

묶여있는 수감자의 몸 위로 세 명의 남자가 올라타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군홧발로 머리를 짓누르고, 가슴과 사타구니에 돌덩이를 떨어뜨린다. 얼굴에 물을 부어 고문하더니 급기야 권총을 뽑아 얼굴 근처에 쏘아대며 위협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던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요원들이 현지인들을 상대로 이처럼 잔혹한 고문을 자행해 용의자가 사망했지만 사건은 은폐되고 이들은 징계 대신 오히려 진급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군범죄수사대(NCIS)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2012년 5월 31일 아프간 남동부 파키스탄 접경 칼락이라는 마을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용의자를 수색·검거한 뒤 발생했다. 네이비실 요원들의 훈련을 받은 지역 경찰들은 고철수집상과 마을 주민 여러 명을 용의자로 지목해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뒤 인근 미군기지로 연행했다.

기지에는 네이비실 요원 6명 외에 해군 지원요원과 의무병 등 육군병, 현지 통역요원 등 모두 15명이 있었다. 경찰의 신문 전 폭행에 이어 네이비실 요원들이 본격적으로 고문을 시작했다. “쇼를 즐겨볼까”라고 하고나선 온갖 잔혹행위를 자행했다. 육군 병사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문은 이어졌다. 용의자들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풀려났다. 머리와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고철수집상 한 명은 돌아가던 길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미군 병력은 사건 직후 기지에서 철수했다. 사건에 자신들이 개입됐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는 네이비실 요원들의 협박에도 육군 병사들은 이들을 고발했고 해군은 고문에 가담한 이들을 NCIS에 넘겼다. 하지만 NCIS의 조사보고서와 기소 및 추가조사 권고에도 이들은 묵비권과 해군 변호사 지원 속에 소속 부대장의 면죄부를 받았고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NYT는 조사보고서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인용, 요원들에 의해 더 많은 잔혹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소속 부대장은 NYT에 “용의자들을 고문한 것은 지역 경찰이지 요원들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