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향응, 납품 뒷돈 등 검찰이 수사해 온 KT&G 경영진의 ‘갑질’이 그 협력업체에도 먹이사슬처럼 대물림되고 있었다. KT&G의 1차 협력업체들은 자신들에게 원료를 대는 2차 협력업체들로부터 오랫동안 대금 일부를 돌려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KT&G에 담배 필터를 제조·납품하는 C사 회장 유모(66)씨와 대표 설모(70)씨 등 4명은 2001년 이후 원료 공급업체들로부터 11억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돌려받은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쓰거나 회사 비자금으로 모으려는 의도였다.
계약 유지가 절실한 2차 협력업체들은 수시로 돈을 건넸다. 골판지 박스를 대던 J사 대표는 “계속 납품하게 해주면 금액의 10∼20%를 돌려주겠다”며 2003∼2009년 57차례에 걸쳐 1억4700만원을 줬다. 필터 경화제를 공급하는 D사의 고문은 “경쟁업체의 물량까지 우리가 납품하겠다”며 2000∼2012년 127차례에 걸쳐 5억7600만원을 건넸다.
활성탄소를 제조하는 S사 대표 김모(66)씨도 “다른 업체보다 우리가 더 납품하게 해 달라”며 2002∼2013년 213차례 3억6300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C사 외에도 KT&G에 담배 필터를 납품하던 D사, H사에 2001년부터 모두 3억800만원을 건넸다. “활성탄소 검사를 원만히 처리해 달라”며 50만원을 부치기도 했다.
10여년간 계속된 리베이트 관행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의 KT&G 수사 과정에서 적발됐다. 리베이트를 받은 C사 4명 등 5명은 18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됐다. 전방위 로비를 펼친 2차 협력업체 김씨는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KT&G와 협력업체 간 불공정한 공생을 파악하고 주변부로도 수사망을 넓혀 왔다. 현직 간부가 납품업체 앞으로 술값을 달아두고 유흥주점 향응을 즐긴 사실, ‘에쎄’ 한 갑이 팔릴 때마다 전직 임원이 하도급업체에서 3원씩 받은 사실 등이 이미 드러났다. 협력업체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던 민영진(57) 전 KT&G 사장은 이날 새벽 구속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갑질’ 먹이사슬 “당한만큼 뜯겠다”… KT&G 협력업체는 2차 업체 등쳐
입력 2015-12-18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