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기골이 장대하게 생긴 북방계 남자.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의 건물 외벽에 이 남자의 전시가 열리고 있음을 안내하는 대형 사진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의 작품 세계를 몰랐던 관람객이라면 전시장 안에 진열된 그림들에 당혹감을 느낄 것 같다.
대개가 여인을 그린 것인데, 딱 봐도 서구적인 외모를 하고 있고 표정에는 불안과 우수가 가득하다. 청회색조의 어두운 얼굴 톤과 크고 퀭한 눈의 여인은 도톰한 입술을 붉게 칠했지만 그 붉은 색이 병색을 더 짙게 보이게 할 뿐이다.
가나아트센터에서 내년 1월 24일까지 열고 있는 한국의 추상미술 1세대이자 초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권옥연(1923∼2011·사진) 4주기 기념전 얘기다. 사후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함경남도 함흥의 ‘권진사 댁’ 5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조부로부터 서예를 익히기도 했지만 바이올린에 심취했던 ‘모던 보이’ 부친으로부터 음악적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에서 미술을 접하고 화가의 꿈을 키워갔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야수파, 큐비즘 등 아방가르드의 산실인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30대 초반이던 1957년, 무대미술가 1세대였던 아내 이병복씨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가 그곳에서 상징주의, 앵포르멜(서정적 추상), 초현실주의 등 동시대의 주요 미술사조를 흠뻑 흡수했다.
1960년 귀국할 때까지 3년여 머무는데 그쳤지만 문학적 은유와 음악적 선율이 흐르는 그의 작품을 두고 초현실주의 선구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동양적 초현실주의”라고 극찬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 미완성작까지 총 50점을 선보이는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받는 강렬한 인상은 청회색이다. 몽환적 여인 초상 뿐 아니라 정물, 풍경 등은 구상적인 형태에 비구상적인 모티브가 섞여 있거나 비구상화면임에도 구상적인 형태들이 엿보인다. 이런 구성 자체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초현실적인 느낌을 밀어가는 힘은 청색, 갈색, 회색의 일관되고 절제된 색조에 있다.
“끔찍할 정도의 개성을 풍겨야 한다. 사방 1㎝만 잘라놓아도 그 그림의 제작자를 알 수 있도록. 박수근처럼 말이다.”
생전에 했던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작가적 목표를 이뤘다. 팔레트에 섞어서 만들어낸 청회색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색조를 추구했는지가 모호하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생전 아틀리에가 재현돼 있어 관람객들이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02-720-1054).
손영옥 선임기자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청회색의 절제된 색조… 권옥연 4주기 기념전
입력 2015-12-21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