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출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해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나 이들의 출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이들은 왜 인간사회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일까? 자연계 생물의 모든 행동은 생존을 전제로 나타나므로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들은 12∼1월에 번식기를 맞기 때문에 동절기에 가장 민감하고 난폭해진다. 교미 후 약 140일의 임신을 거쳐 5월경 출산하며 1회에 7∼8마리에서 많게는 12∼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후 5개월간 어린 새끼를 보살펴야 하고, 10월 이후 가을철에는 겨울나기와 새로운 출산 준비를 위해 충분한 영양섭취를 필요로 한다. 먹잇감을 찾아 보이지 않는 인간사회의 경계선을 넘는 이유다.
도시화 지역으로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이들의 밀도가 높아져 종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거대 잡식성인 이들의 밀도 변화는 먹이경쟁을 통한 내적 조절과 상위 포식자에 의한 하향식 조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하향식 조절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이 강점기에 행한 ‘유해 야생동물 구제’라는 야만적 행위 때문이다. 이로 인해 멧돼지를 먹잇감으로 하는 호랑이, 표범, 늑대 등 주요 포식자들이 이 기간에 멸종 혹은 멸종에 이르는 수준으로 격감되었고, 호랑이는 1920년대, 표범은 1960년대, 늑대는 1970년대에 절멸되었다.
홍적세(약 250만년 전∼1만2000년 전)에 동남아 지역의 섬에서 기원한 멧돼지는 빙하기에 섬과 대륙이 연결되면서 남중국, 한반도 북부를 거쳐 우리 곁으로 왔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7개 무리로 다양하게 분화됐고, 한반도 내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 역시 높다. 이들 유전적 다양성은 자원으로도 가치가 높아 사육돼지의 품종 개량이나 구제역 등 질병 저항형질을 개발하는 데 유용하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존재적 가치를 지닌다. 이들과의 아름다운 공존은 인류의 몫이다. 무조건적 포획 대신 하향식 조절기능 복원을 통한 생태적 방법으로 이들 규모를 조절하는 순리적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늑대 복원부터 통일 한반도를 영역으로 삼는 한국호랑이의 복원을 함께 준비해보자.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사이언스 토크] 멧돼지의 역습
입력 2015-12-18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