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지뢰 사고 2건이 발생했다. 8월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DMZ를 수색하던 김정원(23) 하재헌(21) 하사가 북한 목함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었다. 온 나라가 분노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병상을 찾아 위로했다.
국방부는 치료비 전액과 의족 등 보장구를 지원했다. 어떤 기업은 두 하사의 향후 학업을 책임지기로 했고, 다른 기업은 1000만원씩 치료비를 전달했다. 두 하사는 내년 11월 중사 진급도 예정돼 있다. 군은 이들이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8월 23일 하재헌 하사의 입대 동기인 육군 25사단 신권혁(23) 하사도 지뢰를 밟았다. 3주 전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 간 군사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신 하사는 북한군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한 추진철책 북쪽에서 수색작전을 하고 있었다. 통신장비 감도 체크를 위해 대열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 뒤쫓아 가던 중에 지뢰를 밟았다.
그가 밟은 것은 우리 군이 매설한 M-14 대인지뢰(발목지뢰)였다. 북한 지뢰를 밟은 김정원·하재헌 하사와 아군 지뢰를 밟은 신권혁 하사. 두 지뢰의 ‘국적’은 이들을 상반된 처지에 놓이게 했다.
지뢰 ‘국적’ 따라 달라지는 대우
군 당국은 사흘 뒤에야 신 하사의 사고 경위를 밝혔다. 당시 진행되던 남북 고위급 접촉에 영향을 줄까 우려해서였다. 군은 신 하사가 지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덧신을 신어서 왼쪽 발뒤꿈치 골절 등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2∼3개월이면 완치될 거라고 했다.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 의족을 착용하고 기자회견장에서 펄쩍 뛰어 보인 김 하사와 달리 신 하사는 여전히 전혀 걷지 못한다. 골반뼈를 상처 부위에 이식하고, 종아리 피부를 떼어내 붙이는 수술을 5차례나 했다. 상처 부위는 괴사가 생겨 고름이 차오르고 있다.
신 하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6시 일어나자마자 항생제 주사를 맞는다. 장기간 각종 약물 투여로 간수치가 나빠져 관련 약도 먹는다. 오전 9시 환부 드레싱 치료를 받고, 오전 10시 다시 항생제를 맞는다. 우울증에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오후에도 2∼3회 드레싱이 반복되며, 휠체어를 타고 병원 주위를 도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지루한 치료보다 큰 걱정은 ‘앞으로 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는 병문안 온 장군들에게 “꼭 부대로 돌아가 다시 작전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원·하재헌 하사와 달리 아직 아무런 확답을 받지 못했다.
가장 무서운 건 잊혀지는 것이다. 북한 지뢰를 밟은 군인들을 위해 방송사가 음악회를 기획할 만큼 뜨거운 관심은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 그는 이대로 평생 꿈꿔온 군인의 길을 포기해야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뛰다 다친 젊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밟은 지뢰의 국적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곽중사법’ 통과됐지만…
아직 심의 중이지만 신 하사의 사고는 ‘공상(公傷)’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적과의 교전이나 무장폭동 진압을 하다 부상하면 ‘전상(戰傷)자’가 되지만 북한 지뢰가 아닌 아군 지뢰를 밟아 다쳤을 경우 공상자로 분류된다. 지난해 6월 아군 지뢰를 밟고 민간병원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했던 ‘곽모 중사’도 공상으로 처리됐었다. 군인사법은 교육·훈련 등으로 다친 군인을 공상자로 규정한다. 부대에서 축구하다 다쳐도 공상이다. 목숨을 잃을 뻔했던 신 하사의 부상은 축구하다 다친 것과 똑같이 취급되고 있다.
원래 전상과 공상의 가장 큰 차이는 민간병원 치료비 지원이었다. 군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부상 군인은 민간병원에 이송된다. 그러나 전액을 보전해주는 전상자와 달리 공상자는 30일 이내의 치료비만 지급됐었다.
곽 중사 사연이 알려진 뒤 정치권은 부랴부랴 군인연금법 개정안(일명 곽중사법)을 통과시켜 공상자도 전액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내년 3월부터 적용되고 소급 조건이 까다로워 실질적 혜택을 입는 군인은 400여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신 하사는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국군수도병원으로 찾아와 진료하기에 치료비는 지원받고 있다. 어머니와 군 동기들이 번갈아 그를 간호한다. 그러나 군에서 내년 2월까지만 동기들 간호 지원과 어머니 숙소 지원을 해주겠다고 알려왔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에게 군은 어떤 보상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가 취재를 시작하자 군 관계자는 “숙소 지원의 경우 사단에서 어떻게든 해볼 것”이라고 했다.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예하 부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평생의 꿈 잃고 싶지 않다
초등학교 때부터 “용감한 군인이 돼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공언한 신 하사는 망설임 없이 대학도 군사학과를 선택했다. 지난해 3월 그토록 바라던 군복을 입었고 그해 7월 하사로 임관했다.
입대 후 성적도 뛰어났다. 부사관학교에선 5주간 소대장후보생이었다. 3㎞ 달리기를 11분37초에 주파해 ‘특급’ 판정을 받았다. 영화 ‘연평해전’을 본 뒤에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배들 몫까지 하고 싶다.’ 그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부서진 발 ‘기약 없는 투병’… 신권혁 하사의 산산조각 ‘군인의 꿈’
입력 2015-12-1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