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탄저균 실험] 탄저균 95%, 페스트균 30∼50% 치사율 ‘괴물’

입력 2015-12-17 22:03

탄저균은 호흡기 감염 초기 맞춤 항생제를 투여받지 못하면 치사율이 95%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기도를 통해 들어온 탄저균이 폐에 침투, 폐 조직에 출혈·괴사·부종 등을 일으켜 결국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페스트균의 위력도 그에 못지않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25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았던 ‘흑사병’ 원인균으로, 치사율이 30∼50%에 이른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관련 백신과 치료제 확보에 애를 쓰고 있다. 미국은 ‘바이오 실드’ 계획에 따라 3000만명분의 탄저 백신과 4000만명분의 치료제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탄저균·페스트균 백신이 전무하며, 치료제도 7만명분에 불과하다. 북한과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임에도 생물학무기에 대한 대비가 취약한 상태다.

주한미군이 탄저·페스트균을 반입한 것도 북한의 생물학무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생물방어 능력 향상을 위한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을 2013년부터 추진해온 바 있다. 주피터 프로그램에는 생물학 작용제 분석과 식별 장비의 성능 시험, 사용자 훈련 등을 위해 사균화된 탄저·페스트균 샘플을 주둔 국가로 반입하는 절차가 포함돼 있다. 국내 탄저균 반입은 이 프로그램 가동 이전인 2009년부터 이뤄졌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24일 미국 메릴랜드주 에지우드화생연구소는 두 가지 균 표본을 오산기지로 발송했다. 3중으로 포장돼 민간업체를 통해 4월 26일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표본은 4월 28일 한국 세관에 ‘주한미군용’으로 수입신고돼 하루 뒤인 29일 오산기지에 도착했다. 반입 당시 포장용기에는 탄저·페스트균임을 증명하는 첨부서류가 들어 있었지만 세관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미군의 군사적 목적에 쓰이는 물품에 대해선 별도 확인 절차가 없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현재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상에도 표본 반입 시 우리 정부에 통보하는 절차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샘플은 오산기지 내 생물검사실의 생물안전작업대에서 개봉돼 희석 처리됐다. 이후 5월 20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검사실 내에서 장비 성능시험 등 용도로 사용됐다. 사용이 끝난 샘플은 시험 당일 멸균 비닐봉투에 담겨 고압 멸균 처리됐으며 비닐봉투 등 폐기물은 전문 의료 폐기 업체에 의뢰해 소각 처리됐다. 5월 27일에는 주한미군사령부가 남은 샘플 모두를 8.25% 차아염소산나트륨 용액에 침수시켜 제독한 뒤 폐기했다. 일부 균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미국 국방부가 폐기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탄저균 국내 반입 사실이 알려진 뒤 구성된 한·미 합동실무단이 지난 8월 6일 현장 기술 평가를 실시한 결과 탄저균과 페스트균 모두 음성으로 판정됐다. 22명의 실험 참가 인원 또한 감염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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