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교회를 다녔고 대학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왜 교회를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답을 찾고 싶다.”
장유진(43) 미코필름 대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청년신앙운동’ 트레일러 영상에 출연한 한 청년의 고백이다. 청년신앙운동은 1990년대 폭발적으로 부흥했던 청년신앙운동의 성과와 오늘날 기독 청년들의 신앙 현주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90년대 말 최고조에 이른 청년신앙운동의 부흥과 쇠퇴, 기독 청년들의 ‘가나안 성도’(교회에 나가진 않지만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 심화 현상을 담았다. 이를 위해 장 대표는 지난 5월부터 7개월간 기독 청년과 청년 사역자 40여명을 만났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내일모레 마감하는 영상이 있어 밤새 일하고 나왔네요.” 웃으며 가볍게 말했지만 장 대표는 무척 분주해 보였다. 인터뷰에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공동 기획한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광주지부 총무인 오형국 목사도 동석했다.
사역·추상적 담론에 지친 2000년대 청년들
장 대표는 99년부터 16년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베테랑 프로듀서(PD)다. 지상파 방송국 계열사 PD로 6년간 일하다 2005년 미코필름을 설립해 지상파·케이블 방송과 기업·공공기관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대표작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여성할례, 네팔의 현대판 노예제 등 개발도상국의 환경·인권 문제를 다룬 MBC 시사다큐 ‘W’의 다큐멘터리 50여편이다.
주로 지상파 다큐멘터리나 기업 홍보 영상을 제작한 그가 왜 기독 청년의 신앙에 주목한 걸까.
“주중엔 취업 준비에 시달리고, 주일엔 사역으로 이리저리 치이는 기독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었어요. 주변에 찬양예배, 단기선교, 제자훈련 등 교회 사역만 매달리다 지친 청년들이 꽤 많아요. 나중에 취업할 때엔 또래에 비해 해놓은 게 없어 좌절하다 교회와 멀어지는 이들도 적지 않게 봤고요.”
장 대표는 2009년부터 6년 동안 기독미디어아카데미에서 영상 전문가를 꿈꾸는 기독 청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실기’를 가르쳤다. 실무교육과 함께 진로지도를 하다 보면 제자들이 하나같이 고민하는 게 있었다. 취업 준비와 교회 사역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제자들은 대학 시절 내내 헌신적으로 교회 봉사에 나선 이들이 많아 이제 세상에 나설 준비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교회 목회자들은 잘 훈련된 대학 상급생들인 이들이 더 청년부에 봉사하길 기대했다.
“교회가 마치 성장만을 위해 청년을 양육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청년들의 영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 진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교회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청년들 신앙이 제대로 자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장 대표는 이런 고민을 평소 가까이 지내던 오 목사에게 지난 5월 털어놓았다. 오 목사 역시 한국교회 청년 사역이 청년들의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는 97년 서울 서초구 남서울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
“90년대는 청년 사역의 ‘영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한 시절이었어요. 청년신앙운동에 동력을 제공하는 걸출한 교회 지도자도 많았고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교회는 청년들에게 ‘민족복음화’ ‘통일조국’을 비전으로 삼으라고 했지만 이를 삶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았어요. 도달할 목적지는 보여주는데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은 셈이죠. 문제는 이런 추상적 담론이 지금까지 청년 사역에 계속된다는 거예요.”(오 목사)
장 대표는 오 목사의 공감과 지지에 힘입어 기독청년의 신앙 현주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에 착수했다. 오 목사는 장 대표에게 먼저 청년신앙운동의 부흥기를 겪은 40대 그리스도인을 만나볼 것을 제안했다.
“현재 청년 사역 방식이 9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인원은 현저히 줄었잖아요. 20여년 전 교회교육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인 청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야 현재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알고, 대안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 봤거든요.”(오 목사)
그 많던 90년대 사명자들은 무엇 할까
90년대 대학생활을 한 기독 청년들은 교회에서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기도했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민족의 미래를 걱정했으며 해외선교와 통일·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장 대표는 그때 그 시절 활약했던 청년과 청년 사역자 40명을 만났다. 이제 40∼60대가 된 이들은 목사, 시민운동가, 청년 사역자 등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양세진 소셜 이노베이션 대표,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 최성욱 SFC 학생사역연구소장, 방선기 직장사역연합 대표, 김우경 ㈔청년의뜰 상임대표 등이 장 대표가 만난 사람들이다.
“제가 만난 분들은 신앙 속에서 진로를 찾아 자신의 길을 신념 있게 걷는 분들입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이 90년대 기독 청년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지요. 하지만 그때 당시의 활동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교파적 청년신앙운동으로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됐고, 기독교적 가치관대로 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장 대표)
긍정적 결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오 목사는 취업 후 비전을 잃고 방향을 잃은 ‘90년대 청년’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큰 목표를 품고 사회에 진출해서 오히려 신앙을 잃은 경우도 많아요. 청년 시절 비전이 현실에 부닥쳐 실현되지 못한 경우죠. 그런데 교회는 이들에게 해답을 주지 못한 채 믿음만을 강요했죠. 이렇게 신앙의 비전을 잃은 분들이 가나안 성도가 된 겁니다.”(오 목사)
교회는 청년들의 현실에 응답하라
장 대표는 현 시대 기독 청년들과 사역자들도 두루 만났다. 그가 만난 기독 청년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자신이 왜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교회는 교회 밖 세상과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대학선교단체 리더로 열심히 헌신하는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기독 청년들은 ‘교회가 세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봤어요. 취업이나 진로, 여러 사회문제 대응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건 ‘복 받고 천국가라’는 메시지뿐인데 거기에 목회자 성추행 등 비리가 계속되니 힘들다는 거예요. 사실상 이들이 ‘잠재적 가나안 성도’인 셈이죠.”
대안을 찾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도 장 대표는 결국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학자금 대출로 고통받는 청년을 대상으로 부채 탕감 운동을 펼치는 ‘청춘희년운동본부’와 기독 단체 이름으로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성서한국’을 만난 뒤 이들의 청년 사역에 기대를 걸었다.
“청년들이 문제 제기 대상으로만 비치는 현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서로 도움을 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앞으로 이들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길 기대합니다. 더 나아가 이 영상을 계기로 한국교회 안에서 사역이란 이름으로 동원돼 실질적인 고민도 못 나누는 청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새로운 청년 사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사역자와 성도들의 애정과 관심은 기독 청년의 신앙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청년신앙운동 영상은 이달 내 동명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다. 첫 공개되는 영상의 러닝타임은 30분이며 추후 5분 미만의 영상 4∼5개를 공개할 예정이다. 장 대표의 꿈은 지속적으로 기독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주제와 관련된 영상을 제작해 여러 사람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시선] 주중엔 취업 준비에 시달리고 주일엔 교회 사역에 치이고… 기독청년, 피곤하다 전해라
입력 2015-12-18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