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 기사를 쓴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서울지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문제의 기사 내용이 허위이며, 박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은 인정했다. 다만 비방 대상이 대표적 공인인 ‘대통령 박근혜’인 만큼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언론 보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는 17일 가토 전 지국장의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은 허위사실을 담은 부적절한 기사를 작성했다”면서도 “대통령이란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를 우위에 두고 심사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해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올렸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고, 두 사람은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10월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기사가 사실 또는 허위인지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임을 알았는지 △기사가 박 대통령과 정씨의 명예를 훼손하는지 △가토 전 지국장이 ‘사인(私人)’인 피해자들을 비방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박 대통령 관련 ‘소문’이 허위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정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종합하면 당시 박 대통령과 함께 있었거나, 긴밀한 내연관계라는 사실은 허위”라면서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정씨에 대한 명예훼손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기사 곳곳에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이 아닌 ‘사인 박근혜’에 대한 비방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내리면서도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화한 내용을 작성하면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오후 2시 재판 시작 이후 꼬박 178분간 피고인석에 서서 선고를 들었다. 그는 다리가 아프다는 몸짓을 하면서 변호인을 통해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계속 서 있으세요”라고 일축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무죄가 나온 뒤 기자회견을 열고 “당연한 판결”이라며 “큰 공익성을 지니고 있음은 애당초 자명하며 검찰은 처음부터 기소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산케이신문 기자인 나에게 악의를 갖고 저격하는 것 아닌지 의문을 가져 왔다”면서 “검찰은 항소하지 말고 본건을 종결하기 바란다”는 발언도 했다. 검찰은 “판결문 검토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편 외교부는 ‘18일은 한·일 기본조약 발효 50주년임을 감안해 일본 측 선처 요청을 참작해 달라’는 공문을 선고 이틀 전 법무부를 통해 재판부에 전달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가토 ‘허위기사’로 명예훼손 맞지만 ‘공인’이고 언론자유영역 ‘무죄’ 결론
입력 2015-12-17 17:40 수정 2015-12-18 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