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에 사는 김우빈(19)군은 소문난 싸움꾼이었다. 사소한 말싸움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싸우고 다니자 어느새 비슷한 색깔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무리를 이루자 패싸움으로 발전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 원정 패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한번은 40여명이 난투극을 벌였고 모조리 경찰서 철창신세를 졌다. 학교생활은 엉망이었고 무단결석, 무단조퇴는 일상이었다. ‘꿈’ ‘미래’라는 낱말은 자신과 상관없는 말이었다.
그 아이의 생존법
원래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었다. 전학은 잦았다. 늘 낯선 환경에 낯선 친구들 사이에 던져졌다. 그에게는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만만하게 보이면 밟힌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래서 사소한 시비가 폭력으로 이어졌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작용했지만 첫인상을 강하게 심어주는 건 그의 ‘생존법’이었다.
우빈이는 고등학생이 된 뒤로 아버지와 틀어져 혼자 살고 있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 우빈이를 잘 아는 이들은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특히 비 오는 밤을 싫어한다. 밤에 비가 오면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 잠을 설친다. 그래서 우빈이는 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들여 자취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건 싫었다.
우빈이가 김은영(40·여) 선생님을 만난 건 지난해였다. 한차례 패싸움을 벌여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위기학생 상담 기관인 위(Wee)센터에서 특별 교육을 이수하게 됐다. 상담 이틀째 되던 날, 전날 먹은 과메기 때문에 장염에 걸렸다. 우빈이는 아프면 늘 혼자 견뎌야 했다. 돈도 없었고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
김 선생님은 우빈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우빈이는 “부모님이랑 병원 가는 게 이런 느낌인가”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 선생님은 죽을 먹이고 약도 사주며 간호했다. 밤에는 전화해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우빈이가 불쌍했다. 병원 데려갔을 때 “아프니까 엄마 생각이 나네요”란 소리를 듣고 비슷한 또래인 자기 아들들이 생각났다. 우빈이는 열 살 때 어머니와 헤어졌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김 선생님은 우빈이가 잔소리에 목말라한다는 걸 간파했다. 여느 아이처럼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고 싶었다. ‘모닝콜’부터 시작했다. 결석을 하면 우빈이 친구들을 수소문해 찾아낼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우빈이는 “(학교 가기 싫어) 아프다고 하면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니까 기분이 묘했어요. 이런 게 엄마인가 싶기도 하고. 자꾸 엄마처럼 느껴졌어요”라고 했다.
김 선생님은 우빈이에게 ‘엄마’라고 부르도록 했다. 자격증 시험에 몰두한 것도 그 무렵이다. 무단결석은 하지 않게 됐다. 우빈이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 말, 그 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열아홉 살이 돼 만난 엄마인데 실망시켜드리기 싫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빈이 친구 중엔 김 선생님이 진짜 엄마인줄 아는 아이도 많다.
두 사람은 17일 교육부가 주최한 ‘제5회 위 프로젝트 대상’에서 학생, 교사부문 대상을 받았다. 내년 봄에 졸업하는 우빈이는 컴퓨터 응용밀링 자격증으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동시에 입대 지원서도 냈다. 김 선생님은 우빈이가 군대에 가면 엄마처럼 음식을 싸들고 면회를 갈 생각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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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17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