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서윤경] 경상성장률을 내세운 까닭

입력 2015-12-17 17:41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다큐멘터리임에도 꽤나 극적이었다. 영화는 역사학자인 존 말루프가 벼룩시장의 경매에 나온 엄청난 양의 박스를 헐값에 사들이면서 시작된다. 박스 안에는 필름과 사진 꾸러미가 있었다.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알아본 건 네티즌들이었다. 말루프가 인터넷에 올린 몇 장의 사진에 열광했다. 이때부터 말루프는 박스 속 수첩에서 발견한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을 단서로 사진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은 단순했다. 프랑스 출신의 독신에 유모였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사진은 취미였다. 다행히 그녀의 독특한 시선이 덧입혀져 작품이 된 사진은 말루프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영화를 만든 이도 말루프였다. 그의 영화로 세상 어디에도 없던 비비안 마이어의 정보가 새롭게 작성됐다.

그러나 3개월 뒤 말루프 영화에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전시회에서 접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영국 BBC방송이 만든 다큐멘터리 내용은 영화와 달랐다. BBC는 로저 건더슨이 자신이 갖고 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이베이에 헐값에 올리는 실수를 한 덕에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말루프 덕이 아니었다.

이후 외국의 영화잡지들을 찾았다. 한 잡지는 “말루프가 영화의 초점을 자기 사업에 맞췄고 비비안 마이어의 가치관까지 멋대로 해석했다”고 꼬집었다. 말루프 덕에 정보는 갖고 있는 자에게 막강한 권력을 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극대화시킬 수 있다. 정보가 없는 쪽은 재구성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 16일 경제정책방향은 말루프처럼 정보라는 이름의 권력을 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바로 실질성장률과 경상성장률의 병행 표기를 통해서다. 정부는 ‘체감을 중시한 거시정책 운용’이라는 병행 표기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가 성장률을 인위적으로 높여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심을 받은 것은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가 정보라는 권력을 행사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 10월 보름이상 진행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다. 행사 직후 정부가 뿌린 보도자료에는 백화점·대형마트·시장 등 유통업체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고 했다. 특히 대형마트 3사의 매출은 3.6% 상승했다. 이후 경제 관련 정부의 모든 보도자료에는 코리아 블프 등으로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반전은 있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동향에선 대형마트 3사의 10월 매출이 -1.1%였다. 두 수치의 차이는 간단했다. 물가상승률을 뜻하는 GDP 디플레이터 반영 여부였다. 코리아 블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정부로선 물가상승률을 굳이 반영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선 반대로 GDP 디플레이터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를 합산한 것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반영한 종합물가지수다. 올해 실질성장률은 2.7%지만 GDP 디플레이터를 더하면 5%다. 둘의 차이를 모르는 국민들로선 배 가까이 성장률이 올랐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측한 내년도 경상성장률은 4.5%다. OECD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라트비아의 내년 경상성장률은 각각 7.3%, 5.0%다. 이 차이를 정부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서윤경 경제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