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 한국경제 어디로] 대출금리 벌써부터 올라… 빚에 눌린 112만가구 적색등

입력 2015-12-18 04:11

회사원 황주환(가명·44)씨는 2년 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아 2억원을 대출받았다. 월 45만원가량 이자만 지불하던 그는 내년 8월 거치기간이 끝나면 상환 액수가 140만원가량으로 뛴다. 그는 고심 끝에 집을 세주고 좀 더 싼 신도시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이사할 생각이다. 황씨는 “미국 금리인상으로 대출금리도 오를 것 같아 비용절감 차원에서 이사를 고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년여 만의 미 금리인상으로 초저금리 국면에서 비대하게 늘어난 가계부채 향방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벌써 시장금리가 오르는 추세여서 가파르게 늘어난 각종 빚의 상환 부담이 가계를 짓누르고 있다. 금융 당국은 최근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다독였지만 우리 가계부채가 전 세계적으로도 비정상적 급증세를 보여와 금리인상에 따른 리스크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가계부채 양과 질 악화되는데 시장금리는 벌써부터 상승=올 3분기까지 가계신용(대출+카드빚) 잔액은 약 1166조원이다. 추세를 보면 가계부채는 올해 12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2006년 607조원이던 가계부채는 9년 만에 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올 3분기 증가폭은 사상 최대다. 잔액뿐 아니라 부채증가 속도도 위험 수준이다. 최근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는 1년 새 네 차례 금리인하와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 영향이 가장 컸다. 또 전셋값이 고공행진하자 서민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빚을 내 집을 샀다. 저금리가 지속될 때는 가계부채 위험도는 크지 않았지만 미국 금리가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실제 은행 대출금리는 미 금리인상 전부터 오름세를 보였다.

17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1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1.66%로 전월(1.57%)보다 0.09% 포인트나 올랐다. 오름 폭은 2011년 8월(0.1% 포인트) 이후 4년4개월래 최고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이용되는 코픽스는 17개월 연속 내리막을 타다 9월 이후 두 달 연속 올랐다. 미 금리인상 영향으로 코픽스는 당분간 상승 추세가 예상된다.

금리인상 시 취약한 가구는 얼마나 될까. 한은은 지난 6월 낸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계부실위험지수(HDRI)로 평가한 결과 금리가 오를 경우 112만 가구의 부채에 부실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금리가 2% 포인트 오르고 주택가격이 10% 하락할 경우 위험 가구가 보유한 부채(위험부채) 비율이 19.3%에서 32.3%로 뛰었다.

◇금융위기 이후 韓 부채 상황 나홀로 역주행=절대량으로 보면 우리보다 빚이 많은 나라가 여럿 있다. 문제는 이들 고(高)가계부채 국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채 총량을 줄이거나 채무상환 능력을 키운 반면 우리나라는 되레 역주행을 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64%다. 이는 덴마크(310%) 노르웨이(215%) 스웨덴(172%) 등 일부 유럽 국가 및 호주(188%)보다 낮다. 그러나 부채 증가세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세는 2008∼2013년 8.9%를 기록, 스웨덴(7.6%) 노르웨이(6.0%) 호주(6.3%)보다 가팔랐다. 특히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각국 통계청 조사 결과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등은 지난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6∼9%다. 반면 우리나라는 21.5%로 고부채 국가들보다 최대 5배 가까이 높았다.

한은 윤면식 부총재보는 최근 통화 신용정책 보고서 설명회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직접 받은 북미 및 유럽의 선진국에서 디레버리징(부채정리)이 급격히 이뤄졌지만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아 이의 필요성을 적게 느껴 가계부채 대처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대책보다는 정부 의지가 중요=정부는 내년 2월 수도권부터 적용되는 가계부채 관리대책 시행을 앞두고 16일 은행권 등과 합동대응팀회의를 여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내놓은 대책은 소득 등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점검하면서 ‘부채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된다. 그러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와 같은 핵심 규제가 빠져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주요국보다 높은 DTI 상한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요란한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정부가 경제 침체를 이유로 고수해 왔던 LTV, DTI 규제를 완화한 것처럼 부채 대책은 그동안 경기부양책에 밀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리금 상환으로 국민 부담이 커져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정부가 이 정책을 고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정책 일관성이 가계부채의 폭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주장이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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