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둥지로 날아간 신고선수… 김현수, 볼티모어 입단 합의

입력 2015-12-17 19:27 수정 2015-12-17 19:28
'타격기계' 김현수가 2년 700만 달러를 받고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한다. 김현수는 한국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사진은 김현수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미국을 8대 0으로 꺾고 우승한 뒤 두 팔을 치켜들며 활짝 웃는 모습. 국민일보DB
‘신고선수에서 빅리거로’

김현수는 10년 전 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연습생 신분으로 겨우 프로무대를 밟은 김현수(27)가 꿈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궜다.

◇신고선수에서 대한민국 최고타자로=김현수의 2005년 겨울은 무척 차가웠다. 신일고 3학년이었던 김현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타격에는 재능이 있었지만 외야수로서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하다는 이유로 저평가됐다. 결국 그는 2006년 연습생 신분인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들어갔다. 남들이 수억 원씩 챙기는 계약금 없이 연봉 2000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당연히 프로 데뷔 첫 해는 1군에 단 한 경기만 출장했다.

하지만 김현수는 이를 악물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2군 경기가 끝나고 매일 밤 박스 6개에 들어있는 야구공을 쳤다. 한 박스 당 야구공이 250개가량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매일 1500개나 되는 공을 때린 것이다. 수비 연습도 독하게 했다. 이런 모습이 당시 두산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의 눈에 띠었다. 김 감독은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한 젊은 외야수가 수비도중 딱딱한 담장에 쿵 부딪친 후 땅에 떨어졌다. 부상을 걱정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고 수비 위치로 갔다. 그 선수가 바로 김현수였다”고 회고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절실하게 야구한다면 1군에서도 언젠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2007년부터 김현수를 주전으로 배치했다.

김현수는 2007년 99경기에서 타율 0.273을 기록하며 신고선수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2008년에는 타율 0.357로 타격왕에 오르며 그동안의 설움을 완벽히 날려버렸다.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 최다안타왕까지 거머쥐었다. 김현수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타율은 0.318로 역대 4위에 해당한다. 그는 시즌 100경기 이상을 뛴 2008년부터 올해까지 2012년(타율 0.292)을 제외하고 7시즌이나 타율 3할을 넘기는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타격기계’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꿈의 무대 ‘빅리그’ 입성=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김현수의 2015년 겨울은 따뜻하다. 소속 팀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선 최우수선수(MPV)에 선정됐다.

그리고 17일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계약에 합의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 도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지역신문 볼티모어 선은 “한국 외야수 김현수가 2년 700만 달러(약 82억5000만원)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입단 합의했다.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면 계약이 성사된다”고 보도했다. 김현수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현수가 받는 연봉은 미네소타 트윈스와 4년 12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한 박병호(29)보다도 많다.

김현수는 류현진(28·LA 다저스),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박병호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됐다. 앞선 세 명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거가 됐다는 점에서 김현수는 자유계약선수(FA)로는 처음으로 미국 진출에 성공하는 기록도 남겼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