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송모(73·서울 자곡동)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바쁘게 외출준비를 한다. 오전 9시면 세곡동 서울요양원에서 보내주는 차가 집 앞에 도착한다. 이를 타고 요양원 주·야간보호센터에 가서 비슷한 연령대의 노인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인지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러다 보면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5시를 가리킨다. 올 1월부터 주 5일 ‘개근’을 하고 있다.
송 할아버지는 몇 차례 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방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 가벼운 치매 증상을 제외하곤 신체능력이 양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실비를 내고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기엔 가족의 경제적 부담이 컸다. 동네 노인복지관에 다녔지만 자신을 TV 속 인물과 동일시하는 망상 증상이 심해졌다. 다른 노인들과 다툼도 잦아졌다. 외출이 줄어들며 우울 증상까지 보였다. 수발은 고스란히 아내(62) 몫이었다.
지난해 7월에야 송 할아버지는 경증치매 노인이 대상인 ‘치매 특별등급(5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17일 “집에만 있을 땐 아내가 힘들어해 마음이 불편했는데, 보호센터에 오면서 개인 활동도 가능해졌고 가족도 만족해한다”고 했다. 송 할아버지가 하루 8시간씩 매달 20일가량 보호센터를 이용하고 내는 돈은 월 18만∼19만원이다.
서울요양원은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영하는 ‘1호 장기요양시설’로 문을 열었다. 장기요양기관의 ‘표준모델’ 제시가 주목적이다. 입소자 150명, 주·야간보호센터 이용자 40명이 정원인데 입소문을 타고 1년도 안 돼 꽉 찼다. 현재 입소는 630여명, 보호센터는 10여명이 대기하고 있다. 서울요양원 관계자는 “보호센터는 3개월, 입소는 최소 3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요양원은 신체와 인지 상태에 따라 3종류 유닛(치매, 뇌졸중 등 기타질환, 와상)으로 구분해 개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특히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던 경증치매 노인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올 10월 말 현재 장기요양 5등급을 받은 노인은 1만8004명이다. 이 중 55.6%(1만14명)가 요양서비스를 받고 있다. 시설 입소가 가능한 1∼4등급의 서비스 이용률이 80%를 넘는 것에 비하면 높지는 않다. 아직 초기여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5등급 노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입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대신 주·야간보호시설을 하루 8∼10시간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15%만 본인 부담이다.
주·야간보호시설 이용이 어려울 때는 치매 전문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가 하루 2시간 이내, 월 12회 이상 방문해 인지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천 주안동 유모(87) 할머니는 매주 월·수·금요일 요양보호사 오명자(56·여)씨의 방문을 받는다. 오씨는 유 할머니와 숫자놀이, 그림 똑같이 그리기 등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이는 활동을 한다. 오씨는 “유 할머니의 집중력이 좋아졌고 치매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장기요양 5등급 수급자의 보호자 500명과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인력 750명을 조사한 결과 보호자의 91.7%, 서비스 인력의 90% 이상이 “어르신의 문제 행동이나 치매 증상이 나아지거나 현상 유지됐다”고 답했다. 보호자의 89.3%는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했고, 74.6%는 “수발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부 영세한 노인요양서비스기관은 개선이 필요하다. 식비나 프로그램 운영비 등을 아끼는 탓에 요양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현재 장기요양시설은 5046곳, 방문요양 등 재가(在家) 서비스기관은 1만2677곳이 있다. 건보공단은 장기요양 인프라가 부족한 일부 지방에 공단이 직영하는 주·야간보호센터를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치매관리 종합계획] 서울요양원 1년… 경증치매 노인 “삶의 질이 달라졌다”
입력 2015-12-17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