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늑대’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조직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 않고 단독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난 2일 미국 LA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고로 14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 역시 외로운 늑대들이 일으킨 것이다.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부부인 이들은 미국사회의 부적응 자들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테러로 표출했다. 세계가 외로운 늑대의 테러에 더 긴장하는 이유는 그 시점이나 방식에 대한 정보수집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늑대는 우리 이웃 가운데 존재할 수도 있다. 무엇이 평범한 이들을 외로운 늑대로 키운 것일까. 테러리스트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불만의 틈을 비집고 발흥한다. 그 불평등의 시작점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이다. 선진국의 이기주의가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키웠고 가진 자들의 이기주의가 가난한 자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 될수록 우리 주변에 외로운 늑대들은 점점 더 불어나게 될 것이다.
같은 시기에 세계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딸 출산 소식과 함께 페이스북 주식의 99%를 사회에 기부한다는 발표를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딸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는 가진 것이 많아도 속한 세상이 평온하지 못하다면 그 개인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 진리를 대다수의 사람들은 잊고 살아간다. 저커버그 부부는 딸이 어려서부터 이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세상의 평화와 만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이들처럼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면 세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불행한 사건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해외에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사회 안에도 수많은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타 인종과 문화에 대해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환경에도 그들에 대한 차별이 만만치 않다. 또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만큼 부의 세습이 고착화 돼 있으며 경제적 불평등에서 오는 괴리감이나 좌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사회 부적응 자나 사회 불만세력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외로운 늑대의 출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극단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모두를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2000여년 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는 평화를 주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이름 없는 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다. 그것도 이스라엘 땅에서도 가장 낮고 천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셨다. 성탄은 하나님이 인류구원과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자기를 내려놓으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로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전해 주셨다. 그리고 친히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속제물이 되셨다. 주님이 세상에 가져온 평화는 결코 전쟁이나 힘겨루기로 이뤄낸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고 희생하심으로 이뤄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자기희생적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섬겨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창교 목사 (창원 상남교회)
[시온의 소리-이창교]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입력 2015-12-17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