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학생선발권 대학에 돌려줄 때 됐다

입력 2015-12-17 17:40

대학 신입생 모집을 알리는 광고가 다시 눈에 띈다. 9월 초부터 시작된 대학입시 수시전형이 마무리됐다는 신호다. 전체 모집 정원 35만7278명의 67.5%인 24만900여명이 이미 학교생활기록부나 대학별 논술 등으로 합격했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전형이다. 전국 197개 대학은 24일부터 원서 접수를 일제히 시작한다. 정시 신입생은 지난해보다 1만1407명 줄어든 11만6162명이다. 전체의 32.5%에 불과하다.

정시 모집인원 축소는 대세다. 2006학년도까지만 해도 전체의 절반을 넘었으나 2015학년도에는 34.8%로 뚝 떨어졌고 2017학년도에는 30.1%로 축소된다. 이런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고려대는 2018학년도 정시 비중을 현재 25.9%에서 15% 안팎으로 줄이기로 최근 결정했다. 서강대는 정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은 수시에서 적용하던 수능 최저 등급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분위기다.

이는 수능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에 기인한다.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억제한다는 취지로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해 왔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치르는 2018학년도 수능부터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다. 이렇게 될 경우 수능의 변별력은 엷어질 수밖에 없다. 변별력이 떨어진 만큼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는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대학들이 수시를 늘리고 정시를 대폭 축소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궁극적으로 대학은 학생 선발권을 틀어쥐려고 할 것이다. ‘쉬운 수능’이 당초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대학으로부터 외면받는 결과만 초래한 셈이다.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한국현대사만큼 굴곡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정권마다 길을 찾지 못했다. 1945년 광복 후 큰 틀만 무려 18차례나 변경됐다. 평균 4년도 버티지 못한 셈이다. 수능이 도입된 94년 이후에는 거의 매년 제도를 조금씩 손질했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에 수험생도, 학부모도, 지도교사도 갈팡질팡한다. 현재 고 1∼2학년과 중 3이 서로 다른 입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 것만 봐도 우리 입시의 난맥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고사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세계경제포럼(WEF) ‘2015년 교육 시스템의 질’에서 66위로 하위권으로 평가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시 및 수능 최저 등급 폐지까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능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수능, 학교생활기록부, 대학별 논술 등 입시의 3대 축 가운데 핵심인 수능의 위상 추락은 대입제도 골간에 대한 변화 요구나 다름없다. 입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장기 과제로 지적했듯 대학에 선발 자율권을 넘겨줘야 한다. 정부는 전형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감독만 철저히 하면 된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대학이 자율권을 전폭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노력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학과 특성, 개인적 자질과 발전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한 선발 업무에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전형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

미국 주립대들은 1년 내내 전형 업무만 맡는 입학사정관이 50∼60명이나 된다고 한다.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함이다. 교육 시스템의 질에서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대학들도 공정하고 독립적인 전형으로 학생을 뽑고 있다. 우리도 이제 국가통제적인 입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 첫발은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