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결과와 과정

입력 2015-12-18 19:26

수능 성적 발표 날의 교실 풍경은 올해도 낯설지 않다. 1∼9등급이라는 숫자를 받아든 아이들의 얼굴에는 온갖 표정이 교차한다. 실망과 좌절, 안도감, 곧 자리 잡는 걱정과 허망감….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지낸 몇 년간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온 아이들이 받은 성적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자신이 거친 중·고교 시기, 어쩌면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반기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험생 엄마들에게도 수능 성적표의 숫자들은 ‘엄마로 살아온 삶’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이고, 바로 지금이 부모로서 아이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다독여야 할 시점인데도 부모가 스스로의 성적표에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님께서 나랑 함께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어려웠던 재수생활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지내온 아이가 한 말이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사회가 시험 결과만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교회조차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좋은 신앙의 결과’라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과연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시는 분이야. 넌 정말 잘 해냈어’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적, 합격, 승진, 목표치 달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결과(outcome)로 모든 가치를 판단하고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씨의 지적처럼 ‘생산성 향상’이란 성과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완연한 성과사회다. 성과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결과뿐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누가 어떤 과정(process)을 겪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과정 속에서 개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떠한 기쁨을 누렸으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곤 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 4:18)’고 한 사도 바울의 시각으로 볼 때 진정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 과정’ 그 자체로 봐야 한다. 결과 중심의 칭찬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한발 한발 걸어온 과정 자체, 때론 실패했고 부족했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가치 있게 보며 피드백하는 연습을 아이와 같이 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 정도면 괜찮아. 이게 끝이 아니야. 그렇게 한발 한발 가는 거야”라고 말했으면 한다. 아이들의 미래는 현재의 등수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와 어떻게 나누며 소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