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쓴 시위대를 IS 혹은 테러범과 동일시하는 대통령의 발언 후, 그 후에 등장한 평화적 시위에서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했습니다. 복면을 쓴 폭력적 시위나 물대포로 과잉 대응하는 국가폭력을 피하면서 평화적 시위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가면 시위였던 것 같습니다. 비폭력 평화라는 시위의 방법에서만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기지가 돋보이는 가면들이 등장한 게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복면가왕’에 출연하는 사람도 모두 다 IS 대원이거나 테러리스트냐는 웃지 못할 난센스도 퍼졌습니다.
복면을 쓰는 것은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헝겊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말하는데, 복면의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서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도 사용되었지만 유대교나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에서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너울을 가지고 얼굴을 가린 리브가 이야기(창 24, 65)부터 아가서(4, 1), 이사야(3, 23)에서도 머리 수건과 너울로 여성의 얼굴을 가려 보호하는 관습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서구 세계에서는 여성에 대한 보호라는 본래적 의미보다는 여성 차별,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본래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고전 11, 6)고 말했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이라기보다 기도와 예언의 거룩함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면은 그 외에도 최루가스로부터 호흡기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고,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 혹은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려내어 시위대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한 채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공권력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복면을 쓰고 폭력적 시위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하게 법을 적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복면의 정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치의 복면’입니다. 복면을 쓰고 시위를 하는 것을 ‘복면의 정치’라고 한다면 타협의 예술로서의 정치가 실종된 정치, 유머가 없는 정치, 투명하지 않은 정치, 밀실 정치, 측근 정치, 파벌 정치,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공개 거부,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보는 정부야말로 ‘정치의 복면’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동 개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한 시위대에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했고, 물대포를 맞은 농민 백남기씨는 혼수상태에 빠져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데 책임 있는 사과도 없고,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한 것이야말로 뻔뻔스러운 정치의 복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복면은 언젠가는 벗겨질 날이 옵니다. 그것이 보호를 위한 것이든 위장을 위한 것이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복면을 쓰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선언을 ‘너울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고 부끄러운 것이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이사야 47, 2-3). 감춘 것 치고 드러나지 않는 법이 없고, 함정을 판 자가 자기 함정에 빠지지 않는 법이 없으며(시 7, 15),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이들의 허물을 가리시고, 자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십니다(시 27, 9). 사도 바울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을 사랑의 완성으로 노래했습니다(고전 13, 12). 정부에 대하여 시민이 복면을 쓰고, 시민에 대하여 정부가 복면을 써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지 않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입니다.
채수일 한신대학교 총장
[바이블시론-채수일] 복면의 정치, 정치의 복면
입력 2015-12-17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