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달라는 청와대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과 행정부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특정 법안의 ‘입법권’을 놓고 정면충돌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정 의장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회법에 ‘국가비상사태’ 시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돼 있는데 과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날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의장실로 찾아와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관련 2개 법안, 테러방지법안 등의 직권상정을 요청한 데 대해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 의장은 “어제 청와대에서 메신저(현 수석)가 왔기에 그렇게 (직권상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아봐 달라고 오히려 내가 부탁했다”면서 “내가 (이 법안들의 직권상정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법적으로 못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임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안의 경우 연말까지 여야가 합의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심사기일을 오는 31일 전후로 정해 직권상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총선이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까지 선거구 획정이 안 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고 31일이 지나면 (직권상정 요건인) 입법 비상사태라 지칭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연말연시쯤 (획정안의)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의장은 또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한 현 수석의 언급에 대해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야 대치와 정 의장의 직권상정 요청 거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여당은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긴급명령)을 검토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긴급명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긴급명령에 대해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 빈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의회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고, 삼권분립도 아주 위태로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 의장께서 국회 위상을 제대로 지켜내셨다고 생각한다”며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4·5면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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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국회의장 ‘입법권’ 충돌… 靑 직권상정 요구에 鄭의장 단호히 거부
입력 2015-12-16 21:59 수정 2015-12-17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