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회 정면충돌]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청 거부 왜?… 鄭 의장, 靑의 요구는 ‘초법적 발상’ 못박아

입력 2015-12-16 21:23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16일 당 소속 국회의원 157명의 서명이 담긴 쟁점법안 직권상정 촉구 결의문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장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남 원내대변인,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문정림 원내대변인. 이병주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청와대의 직권상정 요청을 일축한 이유는 쟁점 법안 직권상정이 법으로 규정된 국회의장의 권한 밖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 의장은 ‘직권상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법안 처리를 압박하며 국회를 비판하고, 청와대·여당이 직권상정까지 요청하자 ‘초법적 발상’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국가 의전서열 1위(대통령)와 2위(국회의장)가 특정 법안 처리를 놓고 갈등을 빚은 셈이다.

◇정 의장 “경제 어렵지만 비상사태 아니다”=정 의장이나 청와대 모두 현재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경제위기 수준’인지에 대해선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다.

정 의장은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입법 미비 때문에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청와대 논리와는 큰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정 의장은 경제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해 청와대의 직권상정 요청을 뿌리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인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직접 병원을 운영했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데다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을 지낸 점을 부각시키며 경제 악화 우려에 공감한다고도 했다.

◇직권상정 요청은 초법적 발상=청와대는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등의 직권상정 요청을 “정당한 직무수행”으로 규정한 반면 정 의장은 법적 근거를 갖추지 않아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였다. 정 의장은 “정치적으론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지만 의장 입장에서 초법적 발상을 갖고 행하면 오히려 나라에 혼란을 가져온다”며 “그 혼란이 오히려 경제를 나쁘게 할 수 있는 반작용이 있다”고 했다. 또 “상당히 고심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으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고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지만 요건은 까다롭다. 국회법 85조는 천재지변이나 전시(戰時)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제한하고 있다. 이 법조항은 ‘동물국회 방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정 의장은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제정 문제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할 때에도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분리 처리를 위해 본회의를 열라고 거세게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靑 고강도 압박’에 반발했나=정치권에서는 ‘밥그릇 챙기기 표현은 아주 저속하다’는 정 의장의 날 선 발언이 청와대의 입법 압박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오후 ‘직권상정 촉구 결의문’을 전달하려고 의장실을 찾아오자, 정 의장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찾아올 시간에 야당 의원 한 명이라도 더 만나 합의 노력을 하라”고 했다. 직권상정 요청이 거듭되자 큰 목소리로 화를 내며 5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 의장은 조 원내수석부대표를 향해 “선진화법에 찬성해놓고 왜 이러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친박근혜)계가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 등을 엄격히 제한한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 통과에 동의했었는데 이제 와서 무리한 요청을 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정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도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의장직무대행으로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 법은 통과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라며 과거 국회법 개정에 자신이 반대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정 의장 측근은 “청와대와 각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의장 때문에 민생법안이 표류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큰 그림’을 구상하는 정 의장이 의장 재임 시절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청와대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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