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산문학상에 이어 2015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숨(41·사진) 작가가 7번째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장편이라지만 200쪽 남짓 얄팍한 두께의 ‘경장편’이 대세가 된 시대다. 그래서 600쪽이 넘는 이 소설의 묵직한 두께는 오히려 답답해 보일 수 있다.
작가는 여기서 나아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독서여정에서 중간 중간 쉼표, 혹은 이정표 노릇을 해줄 목차조차 제시하지 않는 우직함을 보인다. 김숨의 작가적 태도가 한 땀 한 땀 그 어렵다는 누비옷을 짓는 소설 속 주인공 ‘바느질 하는 여자’에 비유되는 이유다.
소설은 1970년대, 울산 변두리의 ‘우물집’으로 불리는 외딴집에 사는 ‘바느질하는 여자’와 그녀의 두 딸이 중심인물이다. 성이 다른 두 딸을 바느질하며 혼자 키우는 남수덕을 둘러싸고 마을에는 둘 중 하나는 친딸이 아닐 거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런 미스터리한 요소가 소설에 흥미를 돋우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딸들이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야말로 주인공 남수덕이 누비 바느질에 생을 걸기 위해 견디어온 삶의 조건임을 끝부분에 가서야 독자는 깨닫게 된다.
남수덕의 바느질 솜씨가 더 뛰어났지만 사회가 인정해주는 명장이 된 이는 ‘정인한복’ 여자다. 하지만 남수덕이 지은 누비옷의 탁월함은 입어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입소문은 멈추지 않고, 급기야 누비 바느질만은 그녀에게 배우겠다며 도시에서 온 제자 ‘재숙’까지 나타난다. 세상이 인정해주거나 말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목숨 거는 묵묵함. 그런 태도야말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요즘 시대에 가장 부재한 덕성이 아닌가하고 소설은 묻는 듯하다.
‘바느질하는 여자’는 소설의 주인공이면서 이 땅의 여성을 상징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소설에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잡초 같이 강한 모성들의 사례가 나온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 묻혀 살아온 무수한 여성들의 삶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바느질 솜씨 뛰어나고 착하기 그지없지만, 머리가 따라 가주지 못해 옷 한 벌 지을 줄 모른다고 무시당하는 월성댁, 바람난 남편 탓에 새우잠을 자며 바느질 해 다섯 자녀를 키운 서울한복 여자, 바느질 속도는 늦지만 한 땀 한 땀 뜰 때마다 그 옷을 입을 사람의 복을 비는 또 다른 한복집 여자, 월북한 큰아버지 때문에 신원보증에 걸려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건어물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 뭇 여성들의 이야기가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써내려간 소설 속에 오롯이 살아난다.
소설은 그런 조연들의 이야기도 함께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누비이불 같은 구조다. 경쟁이 치열한 ‘피로사회’의 해결책은 결국은 모두가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같은 제목의 책을 쓴 저자 한병철은 말한 바 있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존재, ‘바느질하는 여자’에 바치는 헌사 같은 책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바느질하는 여자] 이타적 삶… 이 땅의 무수한 母性에 바치는 헌사
입력 2015-12-17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