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美 원유 수출국 되나… 초저유가 우려

입력 2015-12-16 20:00



미국 하원이 자국산 원유수출 금지 조치를 40년 만에 해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미국산 원유가 국제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기록적인 저유가 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핵무기 개발 의혹을 13년 만에 완전히 벗은 이란발(發) 원유 증산도 곧 실현될 전망이어서 글로벌 오일 쇼크가 장기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주요 언론은 민주·공화 양당이 15일(현지시간) 자국산 원유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은 이날 공화당 비공개 회의에서 해당 내용이 포함된 세출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은 17일 표결에 부쳐진다.

당초 양당은 16일 세출법안을 심의하면서 자국산 원유수출 해금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공화당이 주장해 온 원유수출 금지 안건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탄소배출량 감소 문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의 내용을 절충한 ‘빅딜’ 가능성이 예상됐다.

미국은 1차 석유파동 이후 1975년부터 자국산 원유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왔다. 현재는 캐나다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하루 50만 배럴 이하의 제한된 양만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 업계는 그간 미국산 원유의 해외 판매를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셰일 혁명으로 천연가스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대표적 원유 수입국인 미국의 수입량이 자국 내 생산량에 추월당하는 등 공급과잉 현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생산량은 930만 배럴로 5년 전과 비교하면 70%나 늘어났다.

이번 세출법안이 표결을 통과한다고 해서 당장 수출 재개가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백악관은 공화당 지도부가 석유업계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원유수출 해금 정책에)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거부권 발동도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럼에도 미국산 원유 수출이 재개될 경우 국제 유가는 즉각적인 추가 하락에 직면할 형편이다. 셰일가스뿐 아니라 미국산 석유와도 경쟁을 벌여야 할 운명에 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은 저유가 치킨게임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압둘라 알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이날 “미국이 여전히 양질의 원유를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유수출 해금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 수준”이라고 애써 강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특별 집행이사회를 통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해소됐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이란 핵협상 타결과 함께 예견됐던 이란산 원유의 국제시장 습격도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핵사찰을 무사히 통과하면서 이란의 경제·금융 제재 해제가 눈앞에 다가왔고 이는 근시일 내 이란산 원유의 증산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란은 2014년 기준 원유 매장량의 9.3%, 원유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대형 산유국이다. 현재 일평균 280만 배럴을 생산 중인 이란이 금수조치 이전의 일평균 380만 배럴 수준으로 증산할 경우 배럴당 20달러대의 초저유가 국면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아미르 호세인 자마니니아 이란 석유차관은 지난 14일 “유가가 떨어지더라도 이란이 원유 증산 계획을 늦추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경제 제재 해제 시 원유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