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경영전략 수정 왜] “세계 지도 보면 한 곳도 좋은 곳 없어”… 내실로 틀었다
입력 2015-12-16 21:59
현대차그룹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영 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기존 성장전략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가 하락, 미국 금리 인상 예고, 환율 전쟁 등 세계 경제 불황이 계속되면서 현대·기아차의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고 있다. 질적 변화 없이는 향후 몇 년간의 위기를 넘기 힘들고, 미래도 준비하기 힘들다는 내부 결론이 내려졌다.
◇“세계 지도를 펴보라”=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16일 “세계 지도를 들여다봐라. 한 곳이라도 좋은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현대·기아차의 판매 실적 악화가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인 자동차 시장 자체가 좋지 않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국제 시장조사기관 등을 종합하면, 올해 5.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국 자동차 시장은 내년에는 1.6%, 유럽 자동차 시장 역시 올해 6.5%에서 내년 3.1%로 각각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도 10년 평균 33.6%의 성장을 마감하고 올해 3%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브라질 러시아 중동 등 신흥시장의 충격은 더 심하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11월까지 미국과 유럽 인도 등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늘었지만, 중국(―7.52%) 러시아(―12.64%) 브라질(―14.38%) 등에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내년에는 회복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된 데다 유가 하락은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흥시장의 경우 자동차가 아니라 경제 자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주재한 14∼15일 현대·기아차 해외법인장 회의에서도 내년 판매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긴축 대신 미래 대비에 역량 집중=현대차그룹은 질적 성장 전략을 선택하면서 삼성그룹 식의 조직 구조조정 등 긴축 전략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그룹 관계자는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금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내년 친환경차, 수소연료전지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준비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세계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액션 플랜들도 준비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정부와 협력해 친환경차 시장을 열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그룹 관계자는 “수소차와 전기차 충전소 등은 개별 기업으로는 한계가 있는 분야”라며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자동차 분야 역량 투입이 쉽지만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의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실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노조 등 내부적인 고비용 구조,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R&D 투자비용 등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대·기아차 노조는 이날 민주노총의 총파업 지침에 동참해 부분파업을 벌였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임단협과 무관한 정치파업을 벌인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 이후 7년 만이다. 현대·기아차 측은 “임단협 교섭과 무관한 불법 정치파업에 대한 민·형사상 조치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