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혈액세포의 하나인 백혈구에 발생한 암이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골수에 암세포가 축적돼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출혈이 쉽게 발생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수개월 내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승철(23)씨는 지난 8월 서울성모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확진을 받았다. 입원한 뒤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던 이씨에게 11월 초 위기가 찾아왔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백혈구 수치와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항생제가 듣지 않았다. 세균 감염을 치료하려면 최소한 10명에게서 백혈구를 수혈해야 할 상황이었다.
백혈구 헌혈은 일반 헌혈과 달리 병원에 3차례 방문해 혈액검사→백혈구 촉진제 투여→헌혈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마지막 헌혈 단계는 3시간가량 소요된다. 이씨는 하루에 1명씩 열흘간 10명에게서 매일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간에 끊기면 백혈구 수치를 유지하기 어려워 헌혈자를 미리 구해 놓아야 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이씨에게 백혈구 헌혈해줄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달 23일 병원과 가까운 경찰서 몇 곳에 Rh+ AB형 백혈구 헌혈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응답한 이들이 있었다. 서울 관악경찰서 방범순찰대 3소대 오정원(23·사진) 수경, 신영상(23) 일경, 박준영(24) 이경은 사흘 뒤 이 소식을 듣고 “(이씨가) 우리 또래인데 우리가 하겠다”고 나섰다. 곧바로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다. 신 일경과 박 이경은 일반 혈액 헌혈을 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오 수경만 백혈구 헌혈을 하게 됐다. 이달 1일 백혈구 촉진제를 맞은 오 수경은 다음날 오전 서울성모병원에서 3시간30분에 걸쳐 백혈구를 헌혈했다.
오 수경과 지인 9명에게서 백혈구를 수혈한 뒤 이씨는 혈액 내 세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비슷한 증상의 환자가 백혈구 수혈이 중간에 끊겨 세상을 떠나는 것을 봤다. 치료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에 오 수경이 도와줬다”며 “한창 바쁠 때였지만 시간을 내서 찾아와준 이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오 수경은 15일 “헌혈 당일 아침에 조금 피곤했는데 이 때문에 헌혈을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며 “병원에서 ‘피곤한 것은 전날 맞은 촉진제의 영향’이라고 얘기해줘 안심하고 했다. 백혈구 헌혈이 낯설어 부대원 중에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지금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말했다. 세종대 일어일문학과에 재학 중인 오 수경은 “졸업하면 경찰처럼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다. ‘항상 베풀며 살라’ 하신 부모님도 얘기를 듣고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덧붙였다.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백혈병 환자 SOS에 응답한 또래 의경… 팍팍한 삶, 그래도 세상은 따뜻합니다
입력 2015-12-16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