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청, 직권상정 압박 대신 진정성 갖고 야당 설득할 때

입력 2015-12-16 17:42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억지와 오만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야당의 법안심사 거부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청와대가 국회의장에게 관심법안 직권상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례다. 새누리당이 긴급재정명령권 발동까지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다. 야당이 분당 위기로 어수선한 틈을 타 관심법안 처리를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실익도 없이 분란만 일으키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현 경제 상황을 국가비상사태, 준전시상황으로 규정하는 건 코미디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 데다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초법적 조치를 취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초법적 발상으로 행하면 오히려 나라에 혼란을 가져오고 경제를 더 나쁘게 하는 반작용이 있다”고 반박한 것은 옳은 판단이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한다는 방침을 ‘밥그릇 챙기기’라고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가 된다.

청와대가 조속한 입법을 원하는 관심법안은 노동개혁 5개법과 경제활성화 2개법, 테러방지법 등이다. 국회법 제85조가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또는 여야가 합의할 경우에만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정 의장이 이들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를 요구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긴급재정명령권은 대통령이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재정 처분의 실효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동하는 긴급조치다. 현 상황과 전혀 무관함에도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이 이를 언급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두 팔 걷어붙이고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한 달 사이 경제관련법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무려 여섯 차례나 ‘국회 심판론’을 제기하면서도 진정성 갖고 야당에 협조를 당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법안 처리가 그토록 긴요하다면 야당 지도부를 당사로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